정부가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대폭 손질하기로 결정하고 세부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1일 확인됐다. 2014년 단통법이 도입된 지 9년 만이다. 단통법은 소비자가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전화 단말기를 살 때 가입 유형이나 장소에 따라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일이 없도록 같은 보조금(휴대전화 단말기 할인 지원금)을 받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단통법이 9년간 유지되면서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될 수 있는 통신 3사의 보조금 차별화 경쟁만 사라져 오히려 소비자에게 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현재 통신시장경쟁촉진방안TF(태스크포스)가 이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다음 달 중으로 구체적인 개정 방향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TF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 때 통신비 인하를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만들어진 민관 합동 기구다. 또다른 정부 고위 인사도 “오히려 단통법이 통신 3사 간 휴대전화 할인 보조금 경쟁만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 때문에 단통법을 아예 폐지하거나 대폭 손질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안다”고 했다.
◇소비자 득 되는 보조금 활성화
단통법 개정으로 보조금 경쟁 제한이 풀린다면, 소비자는 새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아 통신사를 바꿀 기회가 지금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 현재는 통신 3사가 단통법 때문에 새 스마트폰을 구매하면서 통신사를 그대로 유지한 소비자(기기변경)나 다른 통신사에서 옮겨온 소비자(번호이동)에게 모두 같은 보조금을 줄 수밖에 없지만, 단통법이 풀린다면 타사에서 옮겨오는 소비자에게 이전처럼 더 많은 보조금을 배정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더 많은 보조금을 받고 스마트폰 구매 부담도 더 줄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단통법 시행으로 인해 점점 통신 3사 간 암묵적으로 치열한 보조금 경쟁을 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왔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단통법 이전에 주로 1000만건이 넘던 번호 이동은 단통법 첫해(2014년) 800만건대로 떨어졌고, 이후 2018년부터 500만건대를 유지하다 지난해 이마저 깨졌다. 번호 이동 경쟁이 줄어든 반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통신 3사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6% 늘어난 4조3835억원으로 2년 연속 4조원을 돌파하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결국 소비자들을 위한 보조금과 마케팅 비용을 줄여 결국 통신 3사가 영업이익을 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싸지는 폰 가격도 손질 이유
여기에다 최근 스마트폰 가격이 계속 비싸지고 있는 상황도 ‘단통법 손질’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 S22울트라만 해도 출고가가 145만2000원이었는데, 올해 출시된 삼성전자 S23울트라는 출고가가 159만9400만원으로 새 모델이 나오면서 14만원 이상 비싸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통신비 지출은 전년 대비 3.5% 증가했는데, 이 중 휴대전화 단말기 같은 통신장비 비용 증가 폭(6.9%)이 이동통신 요금과 같은 통신서비스 비용 증가 폭(2.6%)보다 많았다. 결국 스마트폰 가격이 국민들이 체감하는 통신비에 더 큰 부담을 주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5G 중간요금제 추가 출시 등 월 요금에 대해선 보완이 이뤄지고 있지만, 점점 비싸지는 스마트폰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였다”며 “그런 만큼 보조금 경쟁을 제한하는 단통법을 대폭 고치거나 폐지한다면 소비자들이 고가 스마트폰을 구입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내에서도 단통법 개정이 점점 힘을 얻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최근 통신비 절감 브리핑에서 ‘단통법’ 관련 질문을 받자 “개선 방안을 낼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소비자가 통신사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살 때 가입 유형이나 장소 구분 없이 같은 보조금(휴대전화 단말기 할인 지원금)을 지원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통신 3사는 공시한 금액을 초과해 지원할 수 없고, 대리점 현장에서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추가 보조금도 공시지원금의 15% 이내로만 가능토록 했다.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취지였지만, 통신 3사가 암묵적으로 보조금 경쟁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