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일 본지와 통화에서 “정부에서 조만간 전기 요금 조정을 마무리할 것”이라며 “늦으면 늦을수록 국민 부담은 커진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발언은 당정이 전기·가스요금을 조만간 인상하기로 방침을 굳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3월 말 결정됐어야 할 2분기(4~6월) 전기·가스 요금 인상 여부가 국민 부담 등을 이유로 당정 협의에서 보류된 지 한 달여 만이다. 다만 천문학적 적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전과 가스공사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추가 자구책을 내놓을지가 마지막 변수다. 이날 여권 고위 관계자도 “전기료 인상은 곧 결정될 것”이라며 “다만 한전의 자구 노력 등이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 요금 인상이 지체되면서 ‘한전발(發) 금융 위기’, 송·배전망 등 전력망 붕괴 우려까지 커지자 당정이 인상안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추가 자구책 초안을 마련해 당정과 협의를 진행해온 한전과 가스공사는 요금 인상 결정과 맞물려 강도 높은 자구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전기·가스 요금을 인상하더라도 서민 부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올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단계적 요금 인상은 지난 2021년 하반기 유럽발 에너지 위기가 확산할 때 실시된 바 있다. 당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그해 말 전기 요금의 경우 2022년 1분기엔 동결하되 대선이 끝난 뒤인 4월과 10월 두 차례 총 kWh(킬로와트시)당 11.8원, 가스 요금은 5월과 7월, 10월 세 차례에 걸쳐 MJ(메가줄)당 2.3원을 올리기로 했다. 당시는 3월 대선을 의식해 억눌러왔던 전기 요금을 한꺼번에 올리기 어렵다는 정치적 판단이 강했다. 이번 역시 총선이 1년 정도 남은 상황에서 단계적으로 요금 인상을 발표해 가계와 기업이 가파른 부담 증가를 피하고, 요금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요금 인상이 예고되면 에너지 사용량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이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확정한 것은 에너지 업계와 전문가뿐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도 더는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전과 가스공사 재무 상황이 요금 인상을 서두르지 않고선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린 것도 요금 인상을 서두른 배경으로 꼽힌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의 경영난이 심각해지면서 각종 전력 설비 관련 중견·중소기업들은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전기를 팔고서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민간 발전사는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올해만 10조원 가까이 발행된 한전채가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기업들은 자금난을 호소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전의 올해 전기 요금 인상 요인은 kWh(킬로와트시)당 51.6원이다. 지난해 말 산업부는 상반기 인상분을 많이 반영할 경우 한전은 올해 2조원 영업이익이 예상되지만, 3년에 걸쳐 반영하면 올해도 영업 손실이 14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또 현재 최대 6배인 회사채 발행 한도도 13배로 늘여야 한다고 추정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추가 요금 인상이 없으면 한전의 올해 적자가 12조~1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전기 소비자에게 가격 신호를 주기 위해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5월 사용분에 대한 고지서는 6월에 받게 된다”며 “전력 사용 비수기인 5월부터 인상된 요금을 적용해야 냉방용 전력 수요가 많은 7~8월 여름철을 앞두고 요금 충격을 줄이고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금 인상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활용해 취약 계층과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작년 사용량과 비교해 늘지 않았을 경우엔 이전 요금을 적용해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며 “에너지 절약을 유도해 에너지 수입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