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탈원전에 나서고 미국·유럽이 원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러시아와 중국이 전 세계 원전 수출의 80%를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전경련이 원전 전문가인 박상길 박사(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에게 의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전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다른 나라에 수출해 건설 중인 ‘수출 원전’은 작년 말 총 34기로, 13국이 건설 중이다. 이 중 러시아가 23기(68%)를 짓고 있다. 그다음으로 중국과 한국이 각각 4기(12%), 프랑스 3기(8%) 등의 순이었다. 러시아와 중국을 합치면 전체의 80%에 달했다.

러시아는 국영 원전기업인 ‘로사톰’을 중심으로 원전 수출을 확대 중이다. 로사톰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 운영·유지 보수, 자금 지원까지 ‘원스톱 패키지’로 묶어 제공한다. 중국의 경우, 3대 국영 원전기업인 CNNC, CGN, SPIC를 중심으로 원전을 수출한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자체 개발한 원전 ‘화룽 원’을 파키스탄에 이어, 아르헨티나까지 수출에 성공했다. 중국은 파키스탄·아르헨티나에 총건설 비용의 약 80%를 초장기·저금리로 지원하기도 했다. 또 세계 우라늄 매장량의 약 15%를 보유한 카자흐스탄과 우라늄 협약을 맺고 안정적인 원전 연료 공급망도 구축한 상태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 약 55GW 규모의 원전을 운영 중으로, 2030년까지 계획한 추가 원전(약 50GW)을 완공한다면 미국(95GW)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전 보유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러시아·중국이 국가 주도의 수출로 시장을 장악하자, 미국은 이를 심각한 에너지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민간에 맡겼던 원전 산업을 국가 주도로 바꾸고, 원전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심각한 탈원전 후유증을 겪은 한국도 현 정부 들어 원전 산업 복구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이 원전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개발에 집중하는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은 미국이 설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작 능력은 한국이 뛰어나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SMR 협력의 물꼬가 트인 만큼, 향후 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