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부시 지멘스 회장 겸 CEO는 지난달 24일 국내 매체와 가진 첫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의 전략은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연결”이라면서 “한국 기업들과 공장 디지털화 부문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회장 취임 이후 처음 한국을 찾은 부시 회장은 삼성물산·포스코·SK하이닉스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오종찬 기자

“미래의 공장은 산업용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완전히 구현된 공간이 될 겁니다.”

롤랜드 부시 지멘스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는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10년, 20년 뒤 공장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디지털 트윈(디지털 가상 공장)에서 시간을 과거로 돌려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곧바로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개선하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공장이 멈추면 일일이 설비를 뜯어 문제점을 찾고, 프로그램을 업로드하는 지금과 달리 앞으로는 실제 공장과 똑같은 가상 공장에서 해결책을 찾게 되면서 비용과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1847년 독일에서 설립한 엔지니어링 회사 지멘스는 기계·에너지·통신·소프트웨어 등 수많은 분야에 진출했고,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매출 720억유로(약 105조원)를 기록했다. 2021년부터 지멘스를 이끌어 온 부시 회장은 취임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삼성물산·포스코·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관계자를 만나 산업 현장의 디지털화를 논의했다. 지멘스는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전 세계 공장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부시 회장은 “한국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고령화가 진행하면서 노동 인구가 줄고 있다”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자동화와 디지털화”라고 했다.

그는 지멘스를 한마디로 ‘테크놀로지 기업’이라고 정의하면서 “우리의 전략은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연결”이라고 했다. 부시 회장은 “창립 176년이 된 지멘스는 기술에 바탕을 두고 변화를 거듭해왔다”며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디자인이든 제조든 우리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차량이 없고, 뉴욕 시내 1만개 빌딩 자동화에도 지멘스 기술이 적용됐다”고 했다. 에너지 사업 경쟁력이 강했던 지멘스는 2017년 말 ‘첨단 IT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디지털 팩토리·인프라 디지털화에 주력해 글로벌 10위권 소프트웨어 회사로 성장했다. 캐시카우(cash cow·현금창출원)였던 화력 발전은 지멘스에너지로 떼어냈다.

부시 회장은 “디지털 트윈 도입과 함께 기업 간 관계도 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동차 3차 협력업체는 2차에, 2차는 1차에 납품하고 1차 협력업체가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는 지금 시스템에서는 의사소통도 선형적으로 이뤄지지만, 시스템이 네트워크로 이어지면 자동차 회사가 중간 단계 없이 소형 부품사와 직접 접촉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며 “문제 해결 과정이 굉장히 단순화하고 빨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디지털 전환에서는 늦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정부나 소셜미디어, 클라우드 측면에선 다소 뒤처졌다고 볼 수 있지만, 로봇 활용을 비롯한 산업 부문에선 늦었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특히 디지털 전환은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지난 시간보다 앞으로 5년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시 회장은 재생에너지 여건이 열악한 한국 기업에 대해 “태양광 여건은 부족하지만, 해상 풍력은 잠재력이 있고, 원자력은 강국”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을 활용해 청정수소 사업도 확대가 가능하다”며 “지멘스의 기술력도 그동안 간과돼온 건물이나 공장, 교통 분야 에너지 효율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