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 1분기(1~3월)에 5조원이 넘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한전 분기 영업손실이 5조원을 웃돌기는 작년 1분기부터 5분기 연속이 된다. 지금과 같은 전기요금 수준이라면 올해도 10조원 이상 적자가 예상돼 3년간 누적적자는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증권사들이 예상한 한전의 1분기 영업적자 규모는 5조299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1분기보다 전기 요금이 32.6% 오르며 매출도 32% 급증한 21조727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이 미뤄지면서 여전히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가격보다 싸게 파는 구조가 계속되면서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1분기 적자 규모가 최대 8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조속한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빚을 내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한전이 올 연말 회사채 발행을 늘리기 위해 관련 법률 개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수혈이 시급한 응급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들이 회의만 거듭하는 형국”이라며 “결정을 늦출수록 환자 상태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해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55.5원을 주고 발전회사에서 전기를 사왔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겐 120.51원에 팔았다. kWh당 34.99원 손해를 본 것이다. 전기 요금 인상과 에너지 가격 소폭 하락으로 올 1~2월에는 역마진이 15.86원으로 좁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밑지고 파는 구조에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7조7870억원 영업손실을 낸 한전은 분기마다 조 단위 적자를 이어가며 지난 한해 32조6000억원 적자를 냈다. 증권사들은 한전이 원가를 전기요금에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면 올해 적자 규모가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지난 3월말 당정협의를 거쳐 2분기(4~6월) 전기 요금 kWh당 7원 인상이 보류되면서 부담은 더 커졌다. 분기 중에도 전기 요금은 인상할 수 있지만, 이미 인상 전 사용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요금을 올리더라도 약 40일치 정도는 인상 효과를 볼 수 없다.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간담회에서 “(요금 인상이) 5월을 넘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만간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이번 주 안에 자산 매각, 비용 절감 등을 담은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안을 확정하고 요금 인상에 결론을 낸다는 입장이지만, 주 후반으로 예정된 당정협의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서는 2분기 전기 요금을 애초 계획했던 대로 7원가량 올리면 연간 영업 적자는 10조원 안팎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내년도 회사채 발행을 위한 한전법 개정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여야 합의가 필요한 한전법 통과가 진통을 겪으면 전력업계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누적 손실과 투자비 등을 감안했을 때 회사채 한도를 늘리지 않아도 되는 인상 폭은 20원 정도”라고 했다.
2분기 요금 인상이 이달 중에 결정될 경우 국민들의 부담을 고려했을 때, 3분기(7~9월) 요금 인상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가스공사도 1분기 요금 동결에 이어 2분기 요금 인상도 보류되면서 도시가스용 미수금은 11조원대로 늘어났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