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0일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미국으로 출국한 뒤, 22일만인 12일 새벽 귀국했다. 이 회장이 지난 201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래 역대 최장 기간 해외 출장이다. 삼성전자측은 “이 회장은 이 기간 동안 글로벌 제약사 CEO들 뿐 아니라, 첨단 ICT, 인공지능,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전장용 반도체, 차세대 통신)을 주도하고 있는 20여개 글로벌 기업 CEO들과 두루 만나 사업 구상을 했다”고 밝혔다.

이번 출장에서 이 회장은 세계 최대 바이오 단지가 있는 미국 동부에서 존슨앤존슨·BMS·바이오젠·오가논 등 글로벌 바이오기업 CEO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후 미 서부 실리콘밸리로 넘어 가 첨단 ICT 기업 CEO들도 만났다. 구체적으로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딜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등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실리콘밸리에 있는 일식집 사와스시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왼쪽)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사진은 사와스시측이 SNS에 올리면서 공개됐다./사와스시 페이스북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은 이번 출장 기간 동안 매일 한 명 이상의 ‘빅 샷’을 만나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단절됐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했다”며 “이번 출장은 이 회장이 ‘뉴 삼성’ 전략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 CEO들과 중장기 비전을 서로 공유하고, 미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함께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AI, 바이오, 전장용 반도체와 차세대 이동통신은 미국 기업이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미국과의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사업의 존폐를 가른다”며 “반도체 불황으로 중대 기로에 있는 삼성의 이 회장이 직접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신사업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재용 회장은 이밖에도 인공지능 분야의 ‘구루(Guru, 최고 전문가)’와의 교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 받는 전문가들과의 회동을 통해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AI 활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삼성전자와의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에 따라 삼성이 챗GPT 같은 차세대 고성능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은 지난 2018년 유럽·북미 출장에서도 인공지능 분야 글로벌 석학들과 교류했으며, AI 핵심인재 영입에 직접 나서는 등 AI에 큰 관심을 보여왔지만, 뚜렷한 성과는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삼성은 전 세계 7개 지역에서 AI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