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찾은 경남 창원의 두산에너빌리티 공장 외벽엔 ‘친환경 에너지 원자력’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공장 옆 야드엔 중형차 정도 크기의 하얀 쇳덩어리 20여 개가 놓여 있었다. 증기 발생기 같은 원전 핵심 설비 제작에 쓰이는 주단(鑄鍛) 소재다. 경북 울진에 짓기로 한 신한울 3·4호기 제작에 맞춰 5~6년 전에 만든 것들이다. 이동현 원자력 공장장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사업이 중단돼 사용하지 못하고 산화 방지 페인트를 칠해 둬 하얀 것이다”며 “(탈원전 폐기로) 건설이 재개된 신한울 3·4호기 제작에 투입된다”고 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설비 곳곳에 ‘다시 살리자 창원 경제, 신한울 3·4 재개하라’ 문구가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회사와 직원들이 고통받은 흔적들이었다. 작년 6월 이곳을 둘러본 윤석열 대통령은 “탈원전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고 했다.
이날 공장에선 유지·보수용인 한빛 5호기 원자로 헤드, 신고리 3호기에 투입되는 증기 발생기 부품, 신한울 3호기 초기 부품 제작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 참 오랜만이다”며 “적막만 흘렀던 공장이 신한울 3호기 사업 재개로 에너지를 얻었다”고 했다.
◇탈원전 폐허 상징에서 원전 생태계 희망으로
탈원전 정책 타격을 고스란히 맞았던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날 신한울 3·4호기 주(主) 기기(원자로 등 핵심 설비) 착수식을 맞아 창원 공장을 공개했다.
신한울 3호기에 들어갈 증기 발생기 초기 부품은 이날 용접을 시작했다. 결함 여부를 검사하는 탐상 시험, 열처리 등을 거쳐 증기 발생기 제작까지 52개월이 소요된다. 2032년 준공 예정인 신한울 3호기 사업에 맞춰 2027년 납품하게 된다.
창원 공장 전체 면적은 430만㎡(약 130만평), 여의도 1.5배에 달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소재 제작부터 원전 설비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이 가능한 세계 최대 규모와 기술을 가졌다. 지금까지 원자로 34기, 증기 발생기 124기를 생산해 국내외 원전에 공급했다.
하지만 문 정부 5년간 탈원전 정책 탓에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었다. 신규 원전 건설은 백지화되고, 해외 원전 수출도 여의치 않으면서 2017년 100%였던 원전 공장 가동률은 2019년 반 토막 났고, 2020년에는 10% 밑으로 떨어졌다. 직원 수백 명이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원전 핵심 인력 유출도 피할 수 없었다. 이 공장장은 “원전을 아예 안 한다고 했을 땐 그 역할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소식에) 직원들 사기가 많이 올랐다”고 했다.
◇'원전 생태계 복원’에 직원 뽑고, 신사업 확대
두산에너빌리티 원전 공장은 신한울 원전 재개 등 윤석열 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 정책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 350여명에서 150명까지 줄었던 기술 인력도 신한울 3·4호기 재개에 따라 작년 50여 명을 충원해 현재 200여 명 수준으로 다시 늘었다. 하반기에도 50여 명을 더 뽑는다.
또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함께 하는 SMR(소형 모듈 원자로) 신규 사업도 속도를 낸다. 현재 20~30% 수준인 원전 공장 가동률도 SMR 사업 확대를 통해 내년 상반기 10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원전 생태계 활성화 기운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도록 노력하고, 이를 통해 ‘팀 코리아’의 해외 원전 수출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탈원전으로 도산 위기를 맞았던 국내 원전 협력사들도 기사회생 중이다. 신한울 3·4호기 사업엔 460여 협력사가 참여한다. 이달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2조원 규모 원전 보조기 발주를 시작해 새 일감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