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국전력 영업지점./뉴스1

국민들이 내는 전기 요금과 함께 징수해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다. 취약 계층 지원, 발전소 주변 지원 등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태양광 사업 등 이전 정권 주력 사업에 주로 쓰였는가 하면, 정치적 목적이 크게 작용한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의 ‘돈줄’로까지 전락하고 있다. 서민 등 취약 계층을 위한 기금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쌈짓돈’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작년 세 차례에 이어 올해도 두 차례에 걸쳐 전기 요금이 인상되면서, 전력기금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전기 요금에서 3.7%를 부과하는 전력기금 부담률을 조금 낮춰 국민들의 전기 요금 부담을 낮추는 데 쓰는 게 낫다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16일 산업부 산하 전력기금사업단의 ‘2023년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시행계획’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해 전력기금에서 4조원 넘는 돈을 지출한 데 이어, 올해도 3조9000억원의 지출 계획을 세워 놓았다. 이 중 1조5000억원은 에너지특별회계로 전출하고, 나머지 2조4000억원을 자체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중 태양광 사업이 포함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에 절반에 가까운 1조1092억원을 지출한다.

한전공대에는 지난해 267억원을 처음 집행한 데 이어 올해 309억원을 준다. 한전공대 연간 지원금은 점점 늘어 2025년까지 누적 지출 금액은 총 1451억원에 이른다.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는 한전의 여력이 급격히 상실되자 한전공대의 돈줄을 ‘한전’에서 ‘전력기금’으로 바꾸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전공대 출연금의 전력기금 부담 비율은 올해 14%에서 2025년 29%까지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산업부가 전기 요금에서 거둬들이는 전력기금은 2조5894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2022년 연간 2조~2조2000억원 사이를 오갔던 금액이 사상 최대로 치솟은 것이다. 올해 전기료 인상분마저 반영되면 추가로 수천억원이 더 늘 전망이다. 기금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안 쓰고 남은 돈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2019년 3조8000억원대였던 전력기금은 지난 2021~2022년 6조원대로 늘었다.

전력기금이 ‘눈먼 돈’처럼 전국에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정부 감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9월 국무조정실은 전력기금 운영 실태 조사를 통해 총 2616억원의 위법·부당 지원 사례 2267건을 적발했다.

이 중 대부분이 문재인 정부가 주력한 태양광 사업에서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발견됐다. 이 중 농지에 가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을 지은 뒤 그 위에 태양광 시설을 짓고 정부 지원 대출을 받은 사례가 20곳이었다. 현행법상 농지엔 태양광 시설을 못 짓고 버섯·곤충 시설과는 겸용 설치가 가능한 점을 이용한 것이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거나 등록하지 않은 태양광 업체에 정부 대출을 해준 사례도 다수였다. 결산 서류를 조작해 발전소 주변이 아닌 곳에 마을회관을 짓거나, 30억원 규모의 도로 정비 공사를 203건으로 ‘쪼개기’해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지자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업계 전문가는 “전력기금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막강 권한을 가진 쌈짓돈으로 여겨지고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그동안 방만 운영, 과다 징수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개선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6일부터 전기 요금이 kWh당 8원 인상되면서, 4인 가구(월평균 사용량 332kWh)가 더 부담해야 하는 전기 요금은 월 2656원 올랐다. 여기에 국민들은 3.7%인 전력기금 부담금(98.3원), 10%인 부가세(265.6원)를 추가로 더 내야 한다. 결국 다 합치면 월 3020원이 오르는 것이다. 4인 가구가 총부담해야 하는 전력기금은 월 1899원(약 1900원)이 된다. 전력기금 부담 요율을 한시적으로 0%로 낮추면, 이번 전기 요금 인상 부담을 상당 부분 줄여줄 수 있고, 여기에 부가세까지 낮추면 이번 요금 인상 부담을 거의 없앨 수 있다. 이동식 경북대 교수는 “애초에 기금은 목적에 따라 사용 기간을 정해 놓고 운영해야 하는데,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전력기금 부담 요율은 2001년 3.13%에서 2002~2005년 4.591%로 올랐다가 2006년 3.7%로 한 차례 인하된 뒤 지난 17년간 조정 없이 유지돼왔다. 지난 10년간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전력기금 규모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여야 의원들도 전력기금 부담률을 낮추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요율을 2%로 인하하는 안을,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2월 상한을 3%로 정하는 법안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