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대형 건설사는 폴란드에 지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후 재건 사업 참여를 준비하기 위해 인접 국가인 폴란드에 전초 기지를 마련한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기업과의 합작회사 설립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15개월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요 국가와 기업들이 재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에 먼저 들어오는 기업에 보상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유럽투자은행(EIB) 등에 따르면, ‘21세기 마셜 플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유럽 재건 사업)’이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비용은 7500억~1조달러(약 1000조~130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재건 사업 준비하는 국내 기업들
국내 기업들은 발전소와 주택, 도로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미국 원전 기업인 ‘홀텍’과 우크라이나에 SMR(소형 모듈식 원자로)을 건설하기로 하고,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원자력공사와 협력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과 홀텍은 2029년까지 SMR(160㎿급)을 20기 짓고, 필요한 부품을 현지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한 건설업계는 모듈러(조립식) 주택 사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플랜트 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는 발전시설 복구 등과 관련한 사업 검토에 착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젝트를 중요 해외 사업으로 보고, 전사 차원에서 전략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폴란드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와 만나 재건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정부는 최근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해 재건 자금을 지원하기로 우크라이나 정부와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한국 기업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방한한 로스티슬라우 슈르마 대통령실 차장은 지난 17일 한국무역협회 주최 ‘한-우크라이나 비즈니스 포럼’에서 “원전 등 에너지 재건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양구(전 우크라이나 대사) 경상대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특정 지역을 한국 기업들이 전적으로 맡아 각종 인프라와 주택, 학교 등을 짓는 방식을 추진할 만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잰걸음
글로벌 기업들은 일찌감치 움직이고 있다. 이달 초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개발 펀드(UDF)’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블랙록은 작년 12월 UDF 설립에 합의하고, 규모와 참여자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쟁 중에도 이미 재건 사업에 나선 기업들도 있다. 프랑스 건설사 ‘마티에르’는 우크라이나에서 30개의 부교(浮橋)를 짓고, 농업 회사인 ‘마스 시즈’는 종자 사업을 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억유로(약 1400억원)의 보증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 덴마크의 에너지 기업 단포스는 드론을 띄워 우크라이나에서 포격당한 지점들을 지도로 제작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나중에 재건 사업을 할 때, 어떤 지역에 어떤 사업이 필요한지 미리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