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태원 SK 회장은 30여 명의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에게 “’워스트 시나리오(worst scenario·최악의 시나리오)’를 짜오라”고 지시했다. 오는 15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리는 ‘2023 확대경영회의’를 앞두고서다. SK 고위 관계자는 “그룹 핵심인 하이닉스가 인수 11년 만에 연 10조원 적자가 예상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했다. SK는 특히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 전략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3년 전 인텔로부터 10조원에 인수한 중국 낸드 공장이 미국의 ‘최신 장비 도입 규제’로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 등을 감안한 것이다. SK뿐 아니다. 삼성·현대차·LG도 최근 전략 회의를 갖고, 하반기 경영 전략을 확정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上低下高)’가 되길 기대했지만, 회복이 더뎌지고 있어 ‘상저하저(上低下低)’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은 “2030년 논의” 현대차 “샴페인 터뜨릴 때 아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주요 사장들과 회의에서 “2030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래에 어떤 기술이 끝까지 살아남을지 논의하면서, 반도체 이외의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2017년 2월을 끝으로 중단됐던 전체 사장단회의는 최근 6년 만에 재개됐다. 분기별로 열리는 이 회의에서 사장단은 최근 챗GPT, 글로벌 경제 전망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40여 명이 모이는 전체 사장단 회의엔 이재용 회장은 오지 않고, 오로지 전문경영인들이 회장 눈치 보지 않고 난상 토론을 벌인다”며 “강연이 중심이던 과거 수요 사장단 회의와 달리, 지금은 토론이 훨씬 강화된 방식으로 혁신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경영진 회의에서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글로벌 3위에 오른 것을 두고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3위는 최근 신차 공급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달성한 것인 만큼 언제든지 4위, 5위로 내려갈 수 있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특히 대기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라, 지금 실적이 좋더라도 결코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LG “상반기 부진…일희일비 말자”… 상저하저 우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상반기 전략회의인 ‘전략보고대회’를 주재한 데 이어, 지난 31일엔 사장단협의회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예상보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말고 끊임없는 변화를 만들어내자”고 강조했다. LG그룹은 전략보고대회에서 “주요 계열사 상당수가 상반기 실적이 부진했고, 하반기에도 불확실성이 크다”는 인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가 1분기 1조원대 적자를 낸 것을 비롯해, LG화학·LG이노텍·LG생활건강 등이 작년 대비 이익이 감소했다. LG전자는 작년 10월 출범한 비상TF(태스크포스) ‘전사 워룸 태스크’를 현재도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비용 절감, 공급망 재편, 사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중국 경기 부진으로 수출 회복이 연말까지 어려워 보인다”며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도 1% 후반대에서 초반대로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