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는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우리나라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분야는 빠지지 않고 손길을 뻗쳤다.

12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적발한 국내 산업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93건인데 이 중 4분의 1인 24건은 반도체였지만, 나머지 69건은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자동차·정보통신·조선 등 다양했다. 이 기간 산업 기술 해외 유출을 막아 피해를 예방한 금액은 25조원에 이른다.

그래픽=김성규

특히 2000년대 들어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조선업은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많았던 대표적 업종이다. 2020년 퇴직 후 조선기술 자문 업체를 차린 국내 H조선 출신 I씨는 빼돌린 고부가가치 선박 관련 핵심 기술 자료를 중국 경쟁 업체에 넘겨주다 국정원에 적발돼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 2014년 퇴사한 이모씨는 중국 조선소에 고문으로 옮기며 선체 조립 공정 기술을 휴대용 외장 하드 디스크와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해 유출한 혐의로 2016년 검거됐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한 정밀 소재 업체에서 20년 이상 일하던 A씨가 중국 경쟁 업체로 이직하면서 영업 비밀인 기판 유리 설계 도면을 빼내다 검거돼 지난해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엔 국내 대기업과 플렉시블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 패널 제조 장비를 공동 개발한 중소·중견 협력업체가 기밀 유지 협약을 어기고 중국 업체에 같은 제품을 납품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자동차 업종에선 2015년 현대차·기아의 설계 도면을 비롯한 영업 비밀 130여 건이 중국 자동차 업체의 설계를 맡은 국내 기업에 넘어간 사실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당시 이 자료들이 중국 기업의 신차 개발에 사용됐다면 피해액이 3년간 700억원대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 나오기도 했다. 자율주행차에서도 KAIST의 한 교수가 자율주행차의 핵심인 라이다(LIDAR) 기술 자료를 중국 소재 대학 연구원에게 넘기다가 2020년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4차산업 혁명을 맞아 총부리를 겨냥한 전쟁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국가 핵심 기술의 유출인 만큼 철저한 관리와 방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