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낮 최고기온이 영상 20℃ 안팎을 기록하며 맑은 날씨를 보였던 지난 4월 9일 일요일. 이날 낮 12~1시 사이 전국 태양광 발전기 출력은 평균 2만1779㎿(메가와트)로 이 시간대 우리나라 전체 전력 수요(5만5577㎿)의 39.2%를 차지했다. 태양광이 원전이나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제치고 전체 전력 수요의 40% 가까이 차지한 것이다.
탈원전과 동시에 태양광 확대를 밀어붙인 지난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한전이 싼 원전 대신 비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우선 매입한 데 따른 비용 청구서가 속속 날아오고 있다.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설비가 급증해 햇빛이 좋은 봄철 태양광 발전이 크게 늘자, 전력 수급 조절을 위해 값싼 원전 발전을 줄인 탓에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11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이 태양광 발전업체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구매 단가는 올 1~5월 평균 kWh(킬로와트시)당 171원으로 원전(42원)의 4배를 웃돌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전은 원전보다 4배 비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우선 구매하고 있다. 올 들어 원전 감발(출력 감소)로 인한 단순 비용만 20억원이 넘는다. 탈원전을 LNG로 대체하면서 2030년까지 예상되는 47조원 손실에 더해 숨어 있던 청구서인 셈이다.
한전은 전기사업법 31조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사업자의 전기를 우선 구매할 수 있다’를 근거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우선 구매는 강제 조항이 아닌데도 천문학적인 영업 손실을 내는 한전이 원전·석탄 대신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무조건 사들이면서 스스로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한전이 비싼 태양광을 먼저 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지금은 고비용 구조를 낮추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11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4월에는 2·8·9·30일, 3월에는 19·26일 등 올 들어 6차례 태양광 비율이 낮 12~1시 때 전체 전력 수요의 35%를 웃돌았다. 한 시간 단위지만 2036년까지 정부가 계획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30.6%)을 태양광 혼자 크게 넘어서는 수치다. 지난 한해 태양광 발전 비율은 전체 4.5%에 불과했다.
◇봄철 원전 감발 20차례 달해
냉난방 수요가 덜한 데다 날씨가 좋은 봄철에 태양광 발전이 급증한 여파는 값싼 원전의 감발 운전으로 이어졌다. 전기는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도 송배전망에 문제를 일으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태양광 발전이 급증하며 전기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자 전기 구매 단가가 태양광의 4분의 1 수준인 원전 출력을 낮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봄철 태양광 발전이 급증하면서 원전은 3, 4월 모두 20차례 출력을 낮췄다. 지난해와 2021년에는 전력 수요가 급감하는 설과 추석 연휴에만 각각 한 차례 원전 감발이 있었지만, 올해는 1월 설 연휴 외에도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면 출력을 줄여야 했다. 봄철은 일조량과 기온이 적절해 태양광 발전이 많이 늘어나지만 공장과 사무실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는 전력 수요가 뚝 떨어지자 가장 값싼 에너지원인 원전의 출력을 낮춘 것이다. 태양광 과잉 발전 탓에 원전 발전을 멈춘 규모는 전력량으로 1만6750MWh(메가와트시)에 달했다. 월평균 332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으로 5만450여 가구가 한 달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이 기간 원전 대신 태양광 전기를 구매해 한전이 추가 부담한 비용은 20억원이 넘는다.
◇원전·신재생이 2036년 되면 3분의 2 차지
값싼 원전 대신 태양광을 더 돌리는 것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전체 발전량의 7.5%에 그쳤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30년에는 21.6%, 2036년에는 30.6%로 급증하게 된다. 같은 기간 원전도 27.4%에서 32.4%, 34.6%로 크게 늘어난다. 2036년이 되면 신재생에너지와 원전만으로 전체 전력 수요의 3분의 2를 충당하게 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강하기 위한 설비 등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금과 같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쓰겠다는 건 모순적”이라며 “저장 설비나 전력망에 충분한 투자가 된 뒤에야 제대로 재생에너지가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비용은 한전 차원을 넘어 이곳저곳에서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 전력 소비자들이 동의하고 이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