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공석인 한국전력 사장 자리에 광주 지역구 출신 전직 국회의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교수 출신으로 20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인사가 유력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한전 사장은 1961년 출범 이후 군 출신이 주로 맡다가 민주화 이후에는 고위 관료 출신이 많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민간 경영 기법을 이식하겠다며 기업 CEO 출신들을 잇달아 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전력 산업에 대한 전문성 부족, 사업 추진 과정에 갈등 야기 등 문제가 불거지자 최근 10여 년은 주무 부처인 산업부 차관 출신이 3연속 사장에 올랐습니다.
산업부 차관들 역시 한전의 본질적인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외부 출신 사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치인들이 잇따라 거론되는 것입니다. 19일 인천공항공사·수자원공사 사장에 정치인 출신이 취임하자 한전 사장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한전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앞장섰습니다. 덕분에 2021년 5조8000억원 적자를 내고도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습니다. 직원들은 평균 678만원 성과급을 챙겼습니다. 이후 올 1분기까지 44조원 넘는 적자가 쌓였지만, 인력 감축이나 급여 삭감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한전은 지난달 내놓은 자구안에서 약속했던 직원 임금 인상분 반납조차 노사가 아직 합의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적자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인데 직원에게만 책임을 돌린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합니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일찌감치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이 불었겠지만, 여전히 ‘네 탓이오’만 하는 형국입니다.
정치인 출신 사장 선임설을 두고 한전 일각에서는 “차라리 힘센 정치인이 오는 게 낫다”는 기류도 있다고 합니다. 힘센 거물급 정치인이 와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사장 찬스’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이 같은 모습에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전 새 사장 앞에는 누적 적자와 같은 현안뿐만 아니라 조직 개혁이라는 책무가 놓여 있습니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전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사의 선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