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VS 글로벌 테크 기업.’

19~2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30 엑스포 유치전’을 목격한 한 재계 관계자는 사우디와 한국의 핵심 전략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양국의 ‘리셉션(환영 행사) 경쟁’이다. 지난 19일 사우디가 파리에서 BIE 회원국을 초청한 리셉션에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오일 머니’를 상징하는 사우디국부펀드 PIF 의장과 경제·관광·교통·외교 장관을 대동해 나타났다. 막대한 예산 집행 권한이 있는 왕족들을 내세워 회원국들의 환심을 사려 한 것이다. 반면 21일 한국의 리셉션에 윤석열 대통령의 옆을 함께한 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70여 명의 기업인이었다. 모두 세계적 기술 경쟁력을 자랑하는 기업 대표들이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은 얼마 전 기업인 행사에서 ‘세계 국가들이 너도나도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이유는 우리 기업들 덕분’이라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며 “조선·철강·화학·방산 등은 물론 반도체·휴대폰·전기차·이차전지 같은 4차 산업 연관 산업까지도 앞선 데다 K팝·K드라마 등 문화 산업도 강국인 한국에 전 세계가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기업과 정부’가 원(one)팀인 대한민국

한국은 사우디보다 6개월 늦은 지난해 5월 엑스포 유치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다소 늦은 한국의 핵심 유치 전략은 방탄소년단만큼이나 글로벌 인기를 누리는 ‘한국 기업’과 ‘한국 기업인’이었다. 50여 개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들은 1년여 동안 5대양 6대주에 걸쳐 있는 179개 회원국을 분담해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비행기로 가는 데만 이틀이 걸리는 아프리카·남미·태평양 도서국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유치전을 함께 하고 있는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현대차, LG 같은 기업을 모르는 나라는 이제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방문국마다 공통적으로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가 어떻게 반도체부터 자동차, 배터리까지 10개가 넘는 업종을 다 선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신기해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유럽 국가에서는 우리 정부 관료와 삼성 등 대기업 고위 임원이 방문을 하자, 대통령이 장관 9명까지 대동하고 면담장에 나와 깜짝 놀랐었다”며 “대통령이 삼성 휴대폰을 쓰고 있다고 꺼내 보이는 나라는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번 유치전이 치열한 만큼 각 국가들이 우리 기업에 바라는 것들도 많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한 아프리카 국가를 찾았는데, 자국에 배터리에 들어가는 희토류가 많다면서 ‘세계 최고인 한국이 배터리 공장을 지어 달라’고 해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에 직항 노선을 개설해 달라는 요구도 많다고 한다. 한국과의 경제 교류를 넓히고, 구매력이 높은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엑스포라는 국가적 행사에 헌신하는 것은 국격과 기업의 경쟁력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열린 ‘2030 부산 엑스포’ 리셉션(환영 행사)에 참석한 정의선(왼쪽 사진)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LG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이날 리셉션은 엑스포 지지 호소를 위해 BIE 회원국을 모두 한자리에 초청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뉴시스·연합뉴스

◇오일 머니 내세우는 사우디

반면,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 머니와 권력이 한곳에 집중된 왕조 국가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우디는 고위 관료 중심으로 회원국을 돌고 있는데, 회원국에서 요청하는 사항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투자를 결정하고 MOU를 맺는 식으로 환심을 사고 있다”며 “우리는 투자 결정을 하는 데 적잖은 절차가 필요하지만, 사우디는 권력자들의 의사 결정이 빠르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사우디가 19일 파리에서 개최한 리셉션에는 약 300명이 참석했으며, 이 중 BIE 회원국 관계자들은 150여 명으로 추산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날 사우디가 참석자들에게 애플 아이폰을 준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커피잔에 대추야자를 담아준 것으로 안다”며 “BIE가 과도한 선물을 부정적으로 볼 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가 어떤 나라를 다녀오면, 사우디가 귀신같이 알아내 다시 가서 뒤집기를 시도하는 식으로 치열한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11월 최종 투표까지 접전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