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4시 30분(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호텔은 한국과 베트남 정·재계 인사 600여 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베트남이 맺은 MOU(양해각서) 111건 체결식 때문이었다.
MOU가 너무 많아 시간을 줄이려 기념식을 5건씩 한꺼번에 진행했다. 양국 기업인 10명이 양해각서를 들고 나와 양국 주무 장관들 옆에서 기념촬영을 반복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근데 이마저도 30분을 예상했는데 실제는 40분 넘게 걸렸다. 이날 성사된 MOU 111건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해외 순방 성과 중 최대 규모다. 이전 기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6년 이란 방문 당시 66건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111건의 체결식을 1분씩만 해도 111분(1시간 51분)이 걸려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대표적인 몇 건만 기념식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모두 의미 있는 MOU이기 때문에 한꺼번에라도 나와 기념촬영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맺은 MOU 111건에는 IT·자동차·조선·철도·석유·건설·철강·식품·바이오·의료기기·소프트웨어·법률·디지털교육·콘텐츠·방산·원전·항공·탄소중립에너지 등 우리 기업들이 주력하는 20여 업종이 총망라돼 있다. 기업도 SK·GS·HD현대·두산 등 대기업부터 서울반도체·야놀자 같은 중소기업·스타트업까지 참여했다. 재계 관계자는 “베트남은 인건비가 한국의 10분의 1로 중국보다 저렴하고 한국에 호의적이라 탈중국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핵심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각종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어 MOU가 그만큼 많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우리 기업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베트남 방위산업과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 진출이 가시화된 게 큰 의미라는 평가다.
이날 KAI(한국항공우주)는 베트남 최대 통신 기업 비에텔그룹 산하 항공연구소 VTX와 베트남 헬기 수요를 발굴하고 회전익(헬기 날개)의 개발과 생산을 협력하기로 했다. 섬이 많아 항공 수요가 많은 베트남 시장에 국산 항공기 진출 기회가 생긴 것이다.
베트남 전력 인프라 구축에도 참여한다. GS에너지와 수출입은행은 베트남 최대 자산 운용사 비나캐피털과 손을 잡고 베트남 롱안성에 3GW(기가와트) 규모의 초대형 LNG 발전소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베트남원자력연구원과 원자력과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을 하기로 했다. 2016년 베트남 정부가 원전 도입을 취소하면서 위축됐던 양국 기술 교류가 재개되면, 원전 수출 기회도 마련될 전망이다. 이 밖에 한국가스공사와 SK·두산 등도 LNG 발전, 친환경 연료 전환 등 베트남과 광범위한 에너지 협력을 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력 인프라나 방산 진출은 국가 간 고도의 신뢰 관계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번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상호 교역액을 작년의 2배 수준인 연 1500억달러(약 197조원)로 확대하자고 약속했다.
이날 양국 정상과 4대 그룹 총수 등 양국 정·재계 600명이 어울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이와 별도로 손경식 경총 회장은 보 반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