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은 전기를 쓰는 모든 국민이 전기요금에 추가로 3.7%를 붙여 내야 하는 일종의 ‘준조세’다. 하지만 정작 돈을 내는 소비자들은 전력기금이 부과되는지조차 잘 알지 못하고, 어디에 얼마나 사용되는지는 더더욱 모르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지난 정부는 태양광 사업에 수조원을 쏟아부었고, 이와 관련된 각종 비리가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취약층이나 공적사업에 사용돼야 할 기금이 정권 공약 사업을 추진하는 쌈짓돈이 됐고, 태양광 업자 배를 불리는 눈먼 돈이 됐다”고 했다. 가정·소상공인·중소기업 등 전기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재 3.7%인 전력기금 요율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반면 장기적인 전력 인프라 투자를 위해선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용처와 기금 집행을 엄격히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쌈짓돈으로 전락…시행령 바꿔 탈원전 지원까지

전력기금은 2001년 당시 정부가 한전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도입됐다. 공기업인 한전이 그간 담당하던 전력 산업 발전, 도서·벽지 전력 공급 지원 등 각종 공적 사업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전력 인프라 확충에 따라 공적 사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전기요금은 계속 오르면서 기금도 눈덩이처럼 쌓이게 됐다. 이후 수조원대 기금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쌈짓돈’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커졌다. 법령에선 △발전소 주변 지역에 대한 지원 사업 △전력산업 관련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해외 진출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지원 등을 용도로 정했지만, 취약계층 지원이나 공적 사업으로 보기 어려운 곳에 활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전력기금이 원전 홍보에 집행되고, 대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에 쓰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때는 기금을 정권 입맛에 맞는 용도에 사용하는 현상이 가속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양광 사업에 대한 ‘묻지 마’ 보조금과 탈원전 손실 비용에 기금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문 정부는 2021년 6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고쳐, 국회의 감시를 받지 않고서도 탈원전으로 폐쇄했거나 백지화된 원전 사업 손실 비용을 보전하는 데 쓸 수 있게 했다. 또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한전공대 설립에도 지난해 기금 267억원이 집행됐고, 올해 309억원이 투입된다. 지난해와 올해에도 전기차 보급 사업 확대에 따른 에너지특별회계 적자 보전(연 1조3000억원)과 기후대응기금 재원(연 2000억원)으로 2년간 3조원이 전력기금에서 빠져나갔다. 2019년 4조4700억원이던 전력기금 잔액은 올 연말 1조5000억원으로 줄어든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기금 운용을 결정하는 전력정책심의회가 유명무실화됐다”며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기금 요율 인하 목소리 커져

산업계를 중심으로 전력기금 요율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력기금 요율은 2006년부터 18년 동안 3.7%를 유지하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개선을 요구하는 부담금이 전력기금”이라며 “사용처도 불명확한 전력기금은 한시적으로라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요율을 2%로 인하하는 안을,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2월 상한을 3%로 정하는 법안을 냈다.

반면 외국과 비교, 송·배전망 투자에 대한 필요성, 앞으로 요금 인하 가능성 등을 감안해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승진 한국공학대 교수는 “전기에 붙는 제세공과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며 “요율 인하보다는 걷힌 기금을 요금 할인과 같은 복지나 발전소 및 송전망 주변 지역 지원 등에 제대로 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2036년까지 송배전 투자에만 90조원이 필요한데 재원 마련을 위해선 요율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문제로 지적받는 신재생에너지 지원액을 올해 작년보다 22.8% 줄였고, 내년에는 30% 이상 줄일 방침”이라며 “원전 생태계 강화, 취약계층 지원은 물론 전기차 보조금 등에도 기금 수요가 늘고 있어 요율 조정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