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진주시 내동면 능력개발관 대강당에서 열린 ‘K기업가 정신 국제 포럼’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개회식을 지켜보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행사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포럼에선 서양의 기업가 정신과 K기업가 정신을 비교하는 세션도 진행됐다. 해외 학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부각되는 현재, 공동체를 우선한 K기업가 정신에 해답이 있다”고 했다./진주시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은 삼성·LG·GS·효성 창업주가 인연을 맺은 곳이다. 600여 년 전 김해 허씨가 자리를 잡고, 300년 전쯤 능성 구씨를 사위로 맞으면서 허씨와 구씨가 집성촌을 이뤘다. “진주는 몰라도 승산마을은 안다”는 말이 내려올 정도로 조선 시대부터 천석꾼(부자) 마을로 통했다. 풍수지리적으론 학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재물이 나오는 형상이라고 한다. 남강에는 인근 8㎞ 이내에서 큰 부자가 3명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 ‘솥바위’가 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1947년 LG와 GS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공동 창업한 구인회와 허만정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고, 이후 사돈 관계가 되었다. 1931년 구인회가 구인회상점을 차리고 포목 사업을 크게 키우자, 허만정은 일본에서 유학한 삼남 허준구를 데리고 가 “내 아들을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며 사업을 제안하고 자금을 댔다. 1938년 이병철, 조홍제가 삼성상회를 창업할 때는 자금을 지원하며 장남 허정구를 참여시켰다. ‘대한민국 최초의 벤처캐피털리스트’였던 셈이다.

경남 의령에 살던 이병철은 당시 신식학교인 지수초등학교 유학을 위해 허씨와 결혼한 누나 집이 있는 승산마을에 왔다. 이병철은 구인회와 1922년 지수초 3학년 1학기를 함께 공부했다. 지수초에는 지금도 ‘부자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부자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일반인들도 찾아와 사진을 찍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병철의 누나 집은 구인회 본가의 옆집이었는데, 일찍 결혼한 구인회가 의령에서 유학 온 이병철을 불러 함께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고 한다. 1957년 구인회의 3남 구자학과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가 결혼해 두 사람은 사돈 관계가 됐다.

효성 창업주 조홍제는 지수면과 붙어 있는 경남 함안 군북면의 부잣집 아들로 말을 타고 승산마을에 놀러 와 구인회와 축구를 하며 어울렸다 한다. 또 친구였던 이병각의 동생이던 이병철을 좋아했다고 한다. 1948년 조홍제는 이병철과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고 이병철이 사장, 조홍제가 부사장을 맡았다. 조홍제는 1962년 삼성을 나와 56세 나이에 효성을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