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입법은 국내 미디어 산업 발전과 K콘텐츠의 세계적 흥행 기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한국방송협회·한국인터넷기업협회·한국OTT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미디어플랫폼 저작권 대책 연대’가 국회에 계류 중인 ‘추가보상권’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비판하며 낸 성명의 일부다. 추가보상권은 저작권자가 계약을 통해 지식재산권(IP)을 제작사에 넘긴 이후에도 흥행 여부에 따라 추가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2021년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흥행했지만, 감독 등 제작진이 넷플릭스와 IP 독점 계약으로 흥행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관련 법안 5건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제작 당시엔 흥행 여부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를 하는데, 이런 위험을 감수한 측면도 간과하고 ‘잘됐으니 돈 더 내놔라’식의 법안은 사적 계약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법안이 구체적인 보상 방법, 보상 주체 등에 대한 기준조차 없는 점도 ‘거친 입법’이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추가 보상 제도를 도입했더라도 프랑스는 제작사, 독일은 계약 상대방을 보상 의무자로 규정한 반면, 국내 일부 법안은 계약 당사자가 아닌 OTT, 유료방송사업자 등 ‘영상물 최종 제공자’에 책임을 덧씌웠다. 또, 스페인,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은 보상이 필요한 경우를 ‘수익의 중대한 불균형’ 등으로 보수적으로 정해 실제 보상 사례는 드물다.

새롭게 태어나는 산업을 성장시키기는커녕 과도한 개입으로 모래 주머니를 채우는 졸속 입법이 쏟아진다는 비판이 또다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신산업 성장을 계기로 수년 전 ‘과잉 규제’로 판명돼 폐기됐던 규제가 다시 살아나는 ‘좀비 규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런 규제들은 창업 환경 저해로 이어지고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실효성 없다’ 폐지된 전시 산업 신고제가 8년 만에 되살아나려 한다

지난 5월 국회에 올라온 전시산업법 개정안은 이미 8년 전 폐기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가상 공간인 메타버스에서 열리는 전시회까지 포함해 전시 산업에 대해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코로나 기간 취소된 전시·박람회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지원 사각지대가 있어 등록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는 2015년 ‘(전시회) 등록제의 실효성이 낮은 데다 사업자의 업무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규제에, ‘메타버스’를 추가해 다시 부활을 꿈꾸는 법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란 적재적소에 최소화해 핀셋처럼 문제점을 제거해야지 이런 식으로 저인망 어선처럼 규제를 풀어버리면 산업에 끼치는 폐해가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가 활발해지자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인 간 거래(C2C)에서 ‘연락 두절’ ‘환불 거부’ 등 분쟁이 발생하면 중개사업자가 실명·전화번호 등 판매자 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전 세계 어떤 C2C 사업자도 고객 정보를 다른 고객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분쟁 해결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개인정보 보호 침해 우려’ 결정을 내리면서 개정안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신산업에 규제 들이대지만, 법안 가결률 저조

국회의 마구잡이식 법안 발의는 여전하다. 16대 국회 2507건이었던 법안 발의는 20대 국회 때 2만4141건으로 늘었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졸속 법안 발의가 많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 따르면 17대 국회에서 29건이었던 ICT 규제 법안은 20대에서 159건까지 늘어났는데, 정작 가결되는 비율은 7.3%에서 1.1%로 떨어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법안이 발의된 결과”라는 평가였다.

지금도 국내 여러 규제들이 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는 실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83개만이 국내 사업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규제 탓에 8곳은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고, 9곳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경연은 “2019년 규제 샌드박스 도입 이래 총 918건의 신산업 규제를 완화했지만, 여전히 공유경제, 신기술, 신산업 분야 등에서 각종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