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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순방에 동행한 국내 중견 발전 기자재 업체 BHI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폴란드 정부 산하 원자력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건설 예정인 원자력발전소의 플랜트 보조 기기(BOP) 공급에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계약이 성사될 경우 수천억 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미국 원전에 기자재를 납품한 전력이 있지만, 탈원전이 대세였던 지난 정부에서는 수출 계약이나 국내 발주가 모두 끊겨 원전 기자재 사업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이번 정부 들어 해외 수출에 다시 공을 들인 끝에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전기·전력 설비 전문 중소기업 YPP는 지난해 12월 튀르키예 아쿠유 원전에 터빈 계통 관련 계측 설비를 납품하는 계약을 따냈다. 계약 규모는 460만유로(약 66억원)다. 터빈 계통 관련 계측 설비는 터빈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측정하는 장비다. 한국수력원자력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수주에 성공한 것으로, 현재는 제작 전 설계 단계다. 오는 10월 터빈 계측기 1·2호기를 우선 납품해 설치하고, 3·4호기는 2025년 납품할 계획이다.

◇한수원 의존 없이 독자 수출 성공한 원전 中企들

윤석열 정부가 원전 생태계 부활에 나서면서 원전 기자재를 생산하는 중견·중소기업의 독자 수출 성공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력이나 한국수력원자력의 하도급 계약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외국 정부나 원전 기업과 접촉해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간 원전 기자재 수출은 주로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주한 해외 원전 사업의 하도급 형태로 이뤄져 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지난달 말 한수원이 루마니아 체르나보더 원전의 삼중수소 제거 설비 사업을 수주했다. 이런 계약을 수주하면 한수원은 국내 중소기업과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고, 중소기업이 생산한 관련 기자재를 해외에 공급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충격으로 원전 중소기업의 수출은 크게 감소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2021년 국내 원전 기자재 수출 건수는 143건, 액수는 5억3000만달러 규모로 이전 5년 대비 각각 43%, 12.4% 감소했다. 이 중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체결한 수출 계약은 13건에 불과했고, 액수 역시 전체의 1.9%인 1000만달러에 그쳤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 중소기업이 우수한 제품을 생산할 능력은 있지만, 한수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독자적으로 수출을 모색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했다.

◇정부, 원전 중기 수출 역량 확보 나서… “5년간 100사 육성”

최근 세계적으로 신규 원전 건설, 원전 설계 수명 연장 등으로 관련 기자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소기업의 수출 기회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원전 협회는 원전 중소기업의 독자 수출 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산업부는 원전 중소기업 수출 첫걸음 프로그램을 신설해 2027년까지 공기업 수주에 의존하지 않는 원전 중소기업 100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시장조사 단계부터 계약 성사까지 전 단계를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식인데 오는 9월 사업 공고에 나선다. YPP의 튀르키예 수주 역시 산업부와 원전수출산업협회가 튀르키예의 기술 규제 정보를 지원해, 터키 원자력 안전 당국의 안전 규제 인증 취득을 도운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원전수출산업협회는 코트라와 함께 오는 10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리는 인도 원전 콘퍼런스에 참가해 중견·중소기업의 인도 현지 원전 수출 판로 개척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원전 중견·중소 10사를 모집해 항공권·숙박 등 여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현지 정보를 제공하며 현지 기업과 매칭도 주선한다. 인도는 현재 원자력발전소 7곳에서 원자로 총 21기를 운영하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인도 현지에서 한국 원전 기자재 수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