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1일부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제한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다음 달부터 드론 수출도 통제하기로 했다.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품목을 중심으로 “보복 카드를 하나씩 꺼내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수출 금지 품목을 희토류로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협회·디스플레이협회 등 업종별 협회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망센터·희소금속센터·광해광업공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갈륨·게르마늄 공급망 점검 회의를 열고 공급망 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수출 통제가 장기화하거나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 수입 비중이 큰 업체를 중심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 생산에 두 광물 사용량이 많지 않은 데다 이미 호주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대체재를 확보해 당장 국내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갈륨은 정부가 40일 치를 보유하고 있고, 디스플레이업체에서 6개월~1년 치를 확보하고 있다. 산업부는 게르마늄을 비축광물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게르마늄은 대체재가 있는 반도체 가스용 외에 광학·통신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그래픽=김현국

중국은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이 중국으로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자 지난달 3일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국제 광물 정보 업체인 아거스메탈(Argus Metal)에 따르면 지난주 국제 갈륨 가격은 kg당 338.75달러(43만4000원)로 수출 통제 발표가 있기 전인 한 달 전(282.5달러)보다 20% 급등했다. 게르마늄 또한 같은 기간 4% 넘게 올랐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조처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기업은 중국에 유사한 규제를 가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해친 국가의 기업”이라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처럼 중국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통제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중 갈등이 격화되며 ‘자원 민족주의’ 확산과 후폭풍에 따른 우려가 커진다. 냉전 이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오던 글로벌 분업이 붕괴하면서 산업 전반을 넘어 여러 방면에서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세계 광물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갈륨 94%, 게르마늄 83%에 이른다. 두 광물은 반도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첨단 산업은 물론 야간투시경과 같은 전쟁 물자에도 사용된다. 중국이 티타늄, 텅스텐 등 군수용 광물로 수출 제한 조처를 확대하면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주요 13개 군수용 광물 중 갈륨과 게르마늄, 텅스텐, 바나듐, 희토류 등 8개는 중국 점유율이 50%를 웃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2025년까지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위해 캐나다, 호주 등 동맹국과 결속을 다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적어도 2030년까지는 각종 광물의 공급이 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다음 달부터 드론 수출을 통제하기로 한 것도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의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드론의 50% 이상이 중국 DJI 한 회사 제품이다. 중국은 고성능 드론 수출 통제 계획을 발표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이지 않도록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앞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 농업용·보안용 등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상업용 드론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경환 하나증권 연구위원은 “중국이 자신들이 사용 가능한 카드를 속도 조절을 하며 하나씩 꺼내 들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