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지난 4월 인도 뉴델리 인근에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규제 촉구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저속함, 폭력, 마약에서 청소년을 구하라”며 검열 기구 설치 등을 요구했다. 이 시위는 OTT 콘텐츠를 모방해 발생한 엽기 사건들이 발단이었다. 인도에선 지난해 OTT 범죄 드라마에 심취한 한 남성이 동거인을 토막 살해하고, 사촌 사이인 청년 2명이 가짜 납치 사건을 꾸며 가족들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인도 매체 힌두포스트는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는 OTT에 자극적 콘텐츠들이 많아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있다”고 했다.

OTT의 급성장세 속에서 OTT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일반 방송과 달리 OTT는 법적 규제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마약, 선정성, 젠더 이슈 등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과격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이런 영상물이 청소년 등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면서 사회적 문제까지 일으키는 상황이다. 이에 나라마다 이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지만, 한국은 규제는커녕 OTT에 ‘셀프’ 등급 심사를 맡기는 방향으로 가면서 OTT의 폐해를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전 세계는 OTT 선정성·폭력성과의 전쟁 중

규제 사각 지대에 놓인 OTT에서는 성기 노출 장면이 편집되지 않은 채 그대로 들어가는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쉽게 등장한다. 일부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마약 복용 상태에서 환각을 보거나 난교를 암시하는 장면도 아주 상세히 묘사된다. 일반 방송에서 규제되는 욕설이나 흡연 장면도 일상화되다시피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영국은 OTT 콘텐츠에 일반 TV 방송과 유사한 심의 기준을 적용하는 법안 추진에 들어갔다. 심의 기준을 위반하면 벌금 등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프랑스는 지난해 기존 방송과 인터넷 저작권 규제 기관을 통합하면서 OTT 사업자까지 관리하는 시청각·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규제 기구(ARCOM)을 설립했다. 싱가포르에선 미디어 규제 기관인 IMDA가 OTT를 맡아 자국의 규범에 위반되는 콘텐츠 발견 시 해당 OTT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걸프 협력 회의는 지난해 말 OTT들이 동성애를 다룬 콘텐츠를 계속 내보낼 경우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이집트는 OTT 사업자들에 국가의 규범과 사회적 가치를 준수토록 하는 규제 허가 제도 시행을 예고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6월 OTT 사업자들에 흡연 장면에 흡연 유해 경고 문구를 삽입토록 명령했다. 인도에서 매년 흡연으로 사망자가 130만명에 달하는 만큼 이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풀어준 한국

다른 국가들이 OTT 규제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3월부터 국내에서 시행된 OTT 자체 등급 분류 제도다. 국내 모든 영상물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분류를 거치는데, OTT에는 이를 자체적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게 한 것이다. OTT 콘텐츠 공개를 빨리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OTT에 ‘셀프 규제’를 가능토록 해준 셈이다. 이 뿐 아니라 정부에서 운영 면허를 받은 유료 방송 사업자들은 요금제나 소비자 약관 등을 조금이라도 고치려면 정부에 사전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OTT 업체들은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 같은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앞으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가 더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받은 2020~2022년 국내외 OTT 등급 분류 심의 콘텐츠(전체 8365편) 자료에 따르면, 셀프 등급 심사 도입 전에도 14세 이하가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치는 48%였다. 김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통제할 수단이 없다면 마약, 폭력, 음주 등을 다룬 유해한 영상물이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OTT는

’Over The Top’의 약자로 인터넷을 통해 영화, TV 프로그램 등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다. 원래는 디지털 방송 수신 장비인 ‘셋톱박스’를 TV 위에 올려서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받아 TV로 보는 서비스를 뜻했다. 최근 들어 PC·스마트폰 등 다양한 IT 기기를 활용,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실시간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로 의미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