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한국전력의 빚(부채)이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었다. 지난해 2분기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전기 요금을 40% 올리고, 지난 5월엔 부동산 매각 등 25조원 규모의 자구책까지 내놨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올해도 수조 원대 영업 손실이 예상되는 한전은 내년이면 더 이상 빚조차 낼 수 없는 자금 조달 한계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 요금을 대폭 올리거나, 재정을 투입하는 방법 이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인 한전 부채는 결국 국민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빚인 셈이다. 전력 업계 고위 관계자는 “무모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과속이라는 잘못된 정책이 얼마나 가혹하고, 장기적인 후폭풍을 몰고 오는지 한전 사례가 잘 보여준다”고 했다.

◇2년 반 만에 빚 70조원 늘어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전 총부채는 지난 6월 말 기준 201조3500억원을 기록했다. 1961년 회사 출범 이래 사상 처음으로 부채가 200조원을 돌파한 것인데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많다. 총부채는 금융 부채뿐 아니라 자산 증가에 따른 부채 등을 포함한다. 한전의 차입금, 회사채 등 금융 부채는 147조원 수준이다. 재무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부채 비율(부채/자본)은 570%를 웃돈다. 부채 비율은 100% 이하여야 안정적이다. 자산 448조원으로 한전의 두 배 가까운 삼성전자 부채가 89조25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한전 재무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전기 요금 인상이 원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한전 재무구조는 악화했다. 2020년 말 132조원이던 한전 부채는 2년 반 만에 70조원 불어났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던 2021년부터 해마다 수조~수십조 원 적자가 쌓인 탓이다. 하루에 내는 이자만 70억원, 한 달이면 2000억원이다. 빚을 내 이자를 갚는 악순환이다.

정부는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구매한 뒤 대금 지급 일자를 늦출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고, 전기 구매 가격에 대한 상한선까지 뒀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한전 위기가 전력 시장 전체로 퍼지고 있다”며 “송·배전망 투자가 지체되고, 기술 개발이 늦어지면서 부작용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작년 말 데자뷔… 회사채 발행 막힐 가능성 다시 대두

전기 요금은 작년 2분기부터 지난 2분기까지 다섯 차례 올랐다. 인상액은 kWh(킬로와트시)당 40.4원으로 인상률은 40%에 이른다. 요금 인상과 국제 유가 하락 영향으로 3분기(7~9월)엔 1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10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하지만 연간으로는 약 7조원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또 상반기 안정세를 유지하던 국제 에너지 가격이 최근 다시 들썩이고 있어 적자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문제는 한전이 내년이면 자금 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한전법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작년 말 미봉책이라는 비판에도 법을 개정해 발행 한도를 2배에서 5배로 늘린 것이다. 하지만 7월 말 기준 한전채 발행 잔액은 78조9000억원인데 올해 수조원대 추가 손실이 발생하면 한전채 발행 한도가 현재 발행 잔액보다 낮은 70조원으로 줄게 된다. 더 이상 빚내기도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요금 인상과 재정 투입 외에 뾰족한 해법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헌 아주대 교수는 “중국 경기 회복 변수가 있지만, 연말로 갈수록 LNG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은 오름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4분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9월부터라도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투입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이대로 가면 한전은 전기를 사 올 운영 자금조차 부족해진다”며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