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지주사 SK㈜ 이사회는 올해 6회에 걸친 회의를 열고, 수십 건의 안건을 의결했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부결시킨 안건이 있었는데, 바로 조대식 의장·장동현 부회장에 대한 스톡옵션(주식 행사권) 부여 건이었다. SK그룹 관계자는 “2017년 도입한 스톡옵션이 과연 경영진의 성과를 촉진하는 제도가 맞는지 의문이 있었고, 다른 더 좋은 성과급 제도를 찾자는 취지에서 부결됐다”며 “스톡옵션보다는 양도 시점을 먼 미래로 제한하는 ‘조건부 주식’(RS, Restricted Stock) 지급을 확대하는 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스톡옵션은 주가의 대세 상승기엔 임직원의 성과가 나빠도 이익을 보고, 대세 하락기엔 성과가 좋아도 아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여서 보완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김성규
그래픽=김성규

한때 ‘샐러리맨들의 로또’로까지 불리던 ‘스톡옵션’ 대신 ‘RS’(조건부 주식)를 지급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스톡옵션보다 지급 대상·조건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지 않고,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스톡옵션과는 달리 장기적인 성과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스톡옵션은 ‘주식을 일정 가격에 살 권리’를 주는 것으로 만약 5000원이라는 행사 가격을 부여받았는데, 주가가 2년 후 5만원이 됐다면 권리를 행사해 9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주가가 행사 가격보다 떨어지면 휴지 조각이 된다. 스타트업 같은 성장 기업들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내거는 미래 보상으로, 2~3년 후 단기 성과를 유도하는 장치로 활용됐는데, 단기 성과에 집착하다보니 무리한 투자 후 ‘먹튀’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도 지적돼 왔다.

반면, RS는 이미 있는 성과에 대한 보상을 현금 대신 주식으로 주는 것이다. 주식을 곧바로 지급하면서 양도 시점을 제한하는 것은 RSA(Restricted Stock Award), 지급 약정만 하고 일정 기간 후 주식을 지급하는 것은 RSU(Restricted Stock Units)로 구분된다. 주가가 내려도 최소한의 보상이 보장되고, 양도 가능 시점을 장기로 설정해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문제점을 막을 수 있다.

◇한화·두산도 ‘RSU’ 도입… 스타트업도 확대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올 상반기, 한화 16만6004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6만5002주, 한화솔루션 4만8101주를 RSU로 받았다. 현시점의 주식 가치는 136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주식을 지급받는 시점은 10년 후인 2033년이어서 김 부회장이 장기적으로 회사 가치를 올리는 데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한화 관계자는 “임원에게 RSU를 지급하는 계열사는 현금 성과급이 0원으로, 대신 RSU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2020년 한화가 대기업 중 처음 RS를 도입하면서 주요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RS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스톡옵션은 대주주에게는 부여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고, 발행 주식 수의 10% 이내로 부여 수량이 제한된다. 하지만 RS는 특별한 제약이 없고, 부여 수량에도 제한이 없다. RSU는 이 때문에 기업 오너들에게도 부여할 수 있다. 박정원 두산 회장도 올 상반기 RSU로 ㈜두산 주식 3만2266주를 받았다. 양도 가능 시점은 2026년 2월이다.

임원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로 RSU를 확대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특히 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기업의 경우 애사심을 고취하는 효과가 크다. 이차전지 소재 업체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4월 연구·생산 부서 일부 직원에게 자사주 2000여 주(당시 종가 기준 약 8억원)를 부여했다. 업계에선 배터리 업계 인재 쟁탈전에서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보상으로 평가했다. 한화그룹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한화오션이 목표를 달성하면 2024년 2월 대우조선 직원들에게 현금과 RSU를 각각 150%(월 기본급 기준)씩 주기로 했다.

IT·스타트업들도 최근 RS 도입을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CJ ENM, 스튜디오드래곤, 토스, 쿠팡, 위메프, 크래프톤, 씨젠 등이 RS 제도를 도입해 실행 중이다.

◇팀 쿡도 RS 받아… 미국에선 2000년대 도입

RS는 스타트업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선 2000년대 초 스톡옵션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MS) 스티브 발머 당시 CEO는 RS 제도를 도입하면서 “회사가 직원의 이익을 회사 주주의 이익과 더 밀접하게 일치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2011년 애플이 RS 도입을 확대하면서 아마존, 알파벳 등 주요 기업들로 빠르게 퍼졌다. 2011년 애플 CEO에 취임한 팀 쿡은 당시 보수의 대부분을 RS로 받기로 했다. 팀 쿡은 2015년 RS를 모든 직원에게 확대 지급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S&P500 소속 기업 대표 평균 보수 중 54%를 RS가 차지했다.

☞조건부 주식(RS)

근속 기간, 매출액 등 성과 조건을 달성한 임직원에게 회사가 보상으로 지급하되 양도 시점을 제한하는 주식. 특정 시점 및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한인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대비 임원의 책임 경영과 직원의 장기 근속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