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이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 12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3년간(2026년까지) 400억달러(약 52조원) 투자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첨단 제조업을 자국에서 육성하기 위해 천문학적 보조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와 과학법’을 통해 반도체·배터리·전기차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이뤄내겠다는 계획이다. 또 인프라법을 통해 연방 예산이 들어가는 모든 인프라 사업에는 미국산 철강 등 자재를 쓰도록 의무화한 ‘바이(Buy) 아메리카’ 정책을 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반도체법과 IRA 시행 후 8개월간 미 제조업 투자 규모가 2019년의 20배나 되는 2040억달러(약 270조원)로 커졌다고 보도했다.

지난 2021년 4월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를 들고 '글로벌 반도체 대책 회의'를 진행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미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국은 ‘다시 제조업으로 가자’를 외치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모든 산업의 토대가 되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각국 정부는 세금 혜택, 부지 제공, 인력 양성 등 제조업 육성을 위해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있다. 종전 제조업 강국들은 떠났던 기업을 불러와 제조업 부활을 꿈꾸고, 인도 등 신흥국들은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끝내려는 일본도 한때 세계를 제패한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부활을 꿈꾸고 있다.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하자 일본 정부가 나서 투자비의 40%(약 4조50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호응했다. 도요타·키옥시아 등 대기업 8곳은 ‘라피더스’라는 합작사를 세워 2027년 ‘2나노(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또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해 도요타에 보조금 1200억엔(약 1조1000억원)을 지원한다.

EU(유럽연합)는 지난 4월 430억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하는 ‘유럽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초기 법안에선 보조금 지원 범위가 첨단 반도체 공장에 한정됐지만, 최종안에선 반도체 제조 장비를 생산하는 시설까지 확대됐다. EU 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자 ‘EU 주권 기금’ 신설도 논의 중이다.

중국은 최근 경제성장이 무뎌져 흔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제조업 육성에 힘쓰며 ‘글로벌 1위’를 노리고 있다. 2015년 발표한 10년 단위 국가 전략 ‘제조 2025′에 이어 시진핑 주석의 ‘과학기술 자립·자강론’을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 AI 분야는 천문학적 보조금을 줘 가며 초고속 성장 중이다. 비야디(BYD)는 세계 전기차 시장점유율 1위(약 20%), CATL은 세계 배터리 시장 1위(약 36%) 등 성과도 이미 나오고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기술 개발이 더딘 분야는 국가 지원 아래 내수 시장을 몰아주거나 외국 기업 인수합병(M&A)으로 기술을 빼 오면서 발전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는 인도는 2014년 모디 정부 출범 이후 GDP(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제조업으로 채우고, 신규 제조업 1억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전략으로 법인세 인하,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전기차(현대차·도요타), 신재생에너지(아다니) 등 국내외 기업들의 인도 투자 발표가 나며 본격화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도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을 무기로 제조업 공장을 불러들이고 있다. 베트남은 인건비 경쟁력 등을 무기로 글로벌 제조 메카로 떠올랐고, 아세안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세계 최대 니켈 보유국인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공장과 배터리 허브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