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연구원이 설명하는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황배터리. /제작: 스튜디오 광화문, 자료: LG에너지솔루션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장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기로 한 LG가 기자에게 먼저 요구한 것은 ‘보안 교육’과 ‘보안 각서’였다. 이어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야 3층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극건조 실험실에서 고무장갑 끼고 작업

3층의 전고체 배터리를 위한 또 다른 실험실 문 앞에는 이슬이 맺히는 온도를 뜻하는 ‘노점’이 -44.8Td라고 쓰여 있었다. 수분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극건조 상태다. LG가 개발 중인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는 수분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런 ‘드라이룸’에서 실험한다고 했다. 이곳엔 검은 고무장갑이 달려있는 커다란 투명 상자 ‘글러브 박스’가 있었다. 고무장갑을 통해 상자 안으로 손을 넣은 연구원들이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 재료들을 섞고 있었다. 수분과 먼지가 침투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김나윤 연구원은 “장갑을 끼는 작업이 꽤 불편하지만 한 달 단위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삼성 SDI도 전고체 파일럿 ‘S라인’ 구축

차세대 배터리 산업에서 한국이 갖는 강점은 LG엔솔, 삼성SDI, SK온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3총사에다 배터리의 최대 수요처인 현대차그룹도 직접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SDI도 전고체 배터리의 ‘메가 트렌드’인 황화물계를 연구 중인데, 한국 3사 중 가장 도전적인 전고체 배터리 목표를 잡았다. 지난 3월 말 수원연구소에 ‘S라인’으로 명명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공장을 국내에서 처음 갖췄고, 지난 6월 샘플 제작에 성공했다. 삼성은 특히 음극 없이 양극만으로 배터리를 만드는 ‘무음극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음극에서 생성되는 ‘덴트라이트’ 현상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덴트라이트는 금속 표면에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나뭇가지 형태 결정으로, 배터리 화재와 수명 단축의 원인이 된다. 박규성 SDI연구소 차세대개발팀장(상무)은 “소재·셀·공정에서 핵심 기술을 선점해 2027년 대량생산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일본 도요타가 제시한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인 2027~2028년과 비슷하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3' 행사에서 삼성SDI가 전시한 전고체 배터리 모형. /삼성SDI

SK온도 내년 상반기 파일럿 라인 완공,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대전 배터리 연구원 R&D에 47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술 개발을 위해 해외 교수진은 물론 해외 스타트업들과도 적극 협업하고 있다. 고무 형태 고체 전해질을 개발한 이승우 미 조지아 공대 교수, 미국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 솔리드파워가 SK의 파트너다.

현대차도 자체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21년 말 남양연구소 산하 ‘배터리개발센터’를 개설, 배터리 시스템·셀 설계뿐 아니라 전고체 배터리도 연구하고 있다. 지난 6월 전기차 전략인 ‘현대차 모터 웨이’ 발표 때 10년간 9조5000억원을 배터리 성능, 차세대 배터리 선행 기술 개발에 쓰겠다고 했다.

배터리 전문 조사 업체 SNE리서치는 2035년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규모를 815조원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 규모가 630조원(약 4800억달러·세계 반도체 시장 통계 기구 자료)임을 감안하면, ‘제2의 반도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전고체 배터리

적은 용량으로도 전기차 주행거리 1000㎞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현재 대중화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상태 전해질을 쓰기 때문에 충격·열이 가해지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화재가 날 수 있고, 수명도 상대적으로 짧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들기 때문에 변형돼도 화재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