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백형선

본지는 국내 최고 과학기술 싱크탱크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석학 100명에게 한국 산업 경쟁력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 전망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산업의 위기 요인은 무엇이며, 도약을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물었다. 조사는 지난 7월 21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됐다.

석학 100명은 우리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조선, 이차전지는 아직 잠재력이 있고 중국·일본·대만 대비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지만,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로봇, 우주항공 같은 첨단 산업에선 벌써 경쟁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의 본질적인 위기는 앞으로 닥쳐올 위기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인공지능·바이오·배터리 소재 중국에 뒤져

먼저 석학들에게 미국이 100점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중국·일본·대만·독일의 산업별 경쟁력을 물었다. 석학들이 직접 기입한 점수를 평균 내보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24.8점으로 6국 중 가장 높았다. 하지만 대만이 119.3점으로 한국을 거의 따라 잡고 있었다.

이차전지 분야에서도 한국이 116.2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중국이 108.1점을 받아 바짝 추격 중이었다. 이차전지 소재에선 중국(113.6점)이 한국(108.2점)을 추월해 1위였다.

첨단 미래 산업에서는 경쟁력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인공지능 분야에선 84.9점을 받아, 2위인 중국(94.7점)보다 10점이 낮았다. 양자 컴퓨터와 우주 항공 분야에선 각각 79.8점, 73.3점으로 꼴찌인 대만 다음이었다.

그래픽=김현국·백형선

로봇은 일본(111.1점)과 독일(101.3점)이 선두였고, 한국(91.8점)은 중국(90.6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바이오 역시 미국·독일·일본이 10점 이상 앞서나가는 가운데, 한국(83.4점)은 중국(84.2점)보다 낮은 경쟁력을 보였다.

석학들은 먼저 중후장대 제조업 분야에서 키워야 할 1순위 산업으로 35%가 ‘이차전지’를 꼽았다. 또 19%는 ‘이차전지 소재’를 선정해, 절반 이상의 학자들이 이차전지 산업 전반을 핵심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수소에너지(12%), 자율주행차(10%), 소형모듈원자로(9%), 친환경 플라스틱·섬유(7%), 친환경 선박(4%) 등을 지목했다.

첨단 산업에선 AI반도체를 1순위로 꼽은 석학이 38%에 달했다. 이어 인공지능(23%), 바이오(20%)가 비슷한 수준이었고, 양자컴퓨터(10%),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5%), 우주항공(2%), 로봇(2%)도 포함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재 부족”

석학들은 대한민국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외부 요인으로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50%)을 꼽았다. 이어 고금리·고물가·저성장의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27%), 중국의 자강자립·제조굴기(20%)로 대표되는 중국의 부상이 우리를 위협한다고 지목했다.

석학들은 내부 요인으로는 강성 노조나 노동 경직성(32%)의 문제 못잖게 ‘인력 부족’(35%)이라고 꼬집었다.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제도를 물었을 때도 57%의 석학들이 ‘인재 육성 시스템의 전면 개편’이 1순위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미국과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이 다시 제조업에 힘을 쏟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마저 우리를 앞서는 현실에서 우리 산업은 과거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