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포조선이 2021년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Maersk)에서 수주해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완성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이 울산항에서 연료(메탄올)를 공급받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은 지난 6월 이 선박을 처음으로 본지에 공개했다. 벙커C유를 쓰는 일반 선박보다 대기 오염 물질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선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양수산부

지난 6월 1일 울산 현대미포조선 안벽(岸壁·선박을 접안하도록 만든 구조물)에선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Maersk)에서 발주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의 마무리 건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메탄올 선박 건조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다. 500여 척 선박을 운영하며 세계 1~2위를 다투는 머스크는 차세대 표준 선박으로 ‘메탄올 추진선’을 택하고 2021년 6월 현대미포조선에 첫 건조를 맡겼다.

1972년 울산 허허벌판 모래사장에서 시작한 한국 조선업이 제2의 도약을 시작한다. 1999년 일본을 추월해 세계 1위에 오르고 2008년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처음으로 수출 1위(431억달러·10.2%)에 등극했던 조선업은 2010년대 경기 침체와 중국 조선사의 저가 수주 공세에 밀려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10년 넘는 장기 불황에, 심지어 한 해 조선 3사 합계 8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친환경 분야 등 미래 선박 연구에는 매년 2000억원대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어졌다. 반도체, 배터리 등 투자와 비교하면 적은 돈이지만 조선업 미래 경쟁력을 위한 종잣돈이었다.

현대미포조선은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Maersk)에서 발주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건조를 마치고 지난 7월 인도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앞선 기술력으로 해상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따라 늘어난 친환경선박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제작 : 스튜디오 광화문

탄소 배출 규제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전기차 전환이 빨라진 것처럼, 선박도 ‘친환경’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대양을 항해하는 수만~수십만t 선박이 내뿜는 대기 오염 물질은 상상 이상으로, 신형 대형 컨테이너선 한 대가 내뿜는 대기 오염 물질은 차량 1000대와 맞먹는다.

한국 조선사들은 2031년까지 신규 선박 수주만 매년 150조원 이상, 총 1500조원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클라크슨리서치)되는 친환경 선박(메탄올·LNG 추진선 등)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지난달 사실상 ‘2050년 넷 제로(탄소 중립)’를 선언하자, 저탄소 연료 사용과 친환경 선박 전환 압박이 거세졌다. 통상 30년마다 찾아왔던 선박 교체 사이클이 약 10년 당겨졌다.

기회를 잡은 조선 3사는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꾸준히 절반 넘는 수주를 기록하고 있다. 핵심 기술인 이중 연료 엔진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중국(점유율 43%)의 맹추격을 따돌리고, 1위(50%)를 수성했다. 후발 주자인 중국 조선사는 ‘메이드 인 코리아’ 메탄올 엔진을 수입해 탑재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조선사들은 다음 미래 먹거리로 '바다 위 테슬라'로 불리는 자율 운항 선박 기술에 힘을 쏟고 있다. 사진은 HD한국조선해양의 자율 운항 선박 기술 자회사 '아비커스'가 개발한 자율 운항 설루션 '뉴보트'가 탑재된 레저용 보트. /HD한국조선해양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길이 172m, 선폭 32.2m 21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은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컨선’이라지만 외형은 기존 선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박 측면 ‘ALL THE WAY TO ZERO’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2040년까지 ‘탄소중립’ 해운사로 거듭나겠다는 머스크의 미래 전략 메시지였다.

최병붕 현대미포조선 책임은 “외형은 비슷해도 선박의 ‘심장’ 격인 엔진은 기존 연료와 메탄올을 골라 투입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심장’”이라며 “메탄올만 투입하면 기존 대비 최대 황산화물은 99%, 질소산화물은 80%를 수 있다”고 했다.

본지 취재 이후 건조를 마친 이 배는 7월 중순 울산항을 출발해 머스크 본사가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를 향하고 있다. 일반 시민까지 초청해 코펜하겐에서 열릴 선박 명명식에서 머스크는 “세계 최초로 건조한 메탄올 추진선이 향후 머스크 모든 선박의 표준”이라고 선포하며, “‘대한민국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됐다”는 사실을 명시하기로 했다. 현대미포조선의 모회사 HD한국조선해양은 머스크의 메탄올 추진 대형 컨테이너선 18척을 추가로 건조 중이다.

◇친환경 선박 수주 바탕 月 수주 1위 탈환...제2의 전성기 오나

조선 3사 모두 친환경 선박 시장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1만6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선 16척을 약 3조9000억원에 수주했다. 삼성중공업 창사 이래 최대 규모 계약을 친환경 선박으로 따낸 것이다. 이달 10일 찾은 삼성중공업 대덕연구소의 길이 400m, 폭 14m, 깊이 7m 초대형 예인수조에선 최근 수주한 메탄올 추진 컨선 모형실험이 한창이었다. 한화오션도 이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선박에 적용 가능한 메가와트시(MWh)급 ESS(에너지저장시스템) 개발을 완료하며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메탄올 추진선 모형 테스트 - 지난 10일 대전에 있는 삼성중공업 대덕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초대형 수조에 있는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모형을 테스트 운항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우리 조선사들은 친환경 선박 수주 우위를 바탕으로 지난 7월 전 세계 발주량의 44%를 수주해 월별 수주량 1위를 탈환했다. 현재까지 발주된 총 117척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중 61척을 국내 조선사가 수주했다. 업계 관계자는 “3년 이상 일감이 몰리는 등 친환경 선박 수요가 한국 조선사에 몰리면서 신바람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年 150조원 시장 본격화…탄탄한 조선 생태계 뒷받침

친환경 선박 건조에는 HD현대·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대기업들의 역량이 필수적이지만, 중소 기자재 업체들 역시 뛰어난 기술력으로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1998년 경주에서 설립된 엔진 부품 전문 업체 대현공업은 2013년부터 선박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99%까지 줄일 수 있는 챔버 부품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고, 부산의 정우이앤이는 천연가스를 액체로 만들어 탱크에 넣을 때 필요한 극저온(영하 163도) 진공 단열 배관이 주력 제품이다. 최규종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긴 국가는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조선업이 쇠퇴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친환경 선박 대전환을 통해 ‘제2의 조선 전성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1위 엔진 제조사인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선박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연료로 꼽히는 메탄올을 활용한 이중연료 엔진을 상용화했고, 암모니아 엔진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제작 : 스튜디오 광화문

☞친환경 선박

기존 선박 연료(벙커C유)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LNG(액화천연가스)·메탄올·암모니아·전기·수소 등 대체 연료를 활용하는 선박. 국제해사기구(IMO)의 ‘2050년 탄소배출 제로(0)’ 목표에 따라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메탄올 추진선

낮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LNG, 특수 처리가 필요한 암모니아·수소와 달리 상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해 관리가 쉬운 데다 대기오염 물질 배출도 대폭 줄일 수 있다. 친환경 연료 중 상용화가 빨라 경쟁력이 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