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파리 노선을 운항하는 아시아나항공은 자사 항공기가 파리에 갈 때마다 프랑스 정부에 벌금성격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항공기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자국 공항에서 급유하는 항공사에 의무적으로 지속가능항공유(SAF)를 1%씩 섞어 쓰도록(混油) 강제하는 데 아시아나항공은 SAF를 넣지 않기 때문에 부담금을 내는 것이다. SAF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같은 작물이나 최근 폐식용유와 음식 쓰레기 등을 이용해 만든 친환경 항공유다. 기존 가솔린이나 제트연료 항공유보다 탄소 발생량이 최대 80% 적지만 가격은 3~6배 비싸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부담금은 대외비라 공개 못 하지만, 현재는 SAF를 쓰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게 10~20% 싸다”라며 “앞으로 환경 규제가 더 강화되면 SAF를 더 많이 섞어 써야 해 SAF도입을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했다.
EU(유럽연합)를 비롯해 항공 분야에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연료 사용이 의무화하는 추세다. 각국 정부는 세제 혜택을 줘가며 SAF 생산과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 정유 시설과 기술력을 갖추고도 정작 SAF에 대한 법·제도와 생산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항공사가 부담금을 물고, 글로벌 SAF 시장 진출에도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SAF 법·제도·인프라 제대로 없어
항공업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은 기차가 14g, 버스는 68g인 반면 비행기는 285g에 이른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국들은 항공 분야 탄소 감축을 위해 SAF 도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EU 집행위원회가 ‘리퓨얼EU(ReFuelEU)’ 법안을 발표했는데, 2025년부터 EU 27개 회원국 모든 공항에서 항공기 급유 때 SAF를 2% 섞어야 한다. SAF 혼유 비율은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까지 늘어난다.
시장조사업체 TMR에 따르면 세계 SAF 시장 규모는 2021년 1억8660만달러에서 연평균 26.2% 증가해 2050년 40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SAF에 대한 법·제도가 없어 생산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행 석유·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정유사는 석유를 정제해 석유 제품을 제조하는 사업에 국한되어 있다. 또 석유대체연료에는 바이오디젤·바이오중유·바이오가스·바이오에탄올만 포함되고 SAF는 없어 폐식용유 등으로 석유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
이런 탓에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은 SAF 생산 시설조차 갖추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기술력은 충분한데도 법·제도가 미비한 탓에 해외 경쟁사보다 수년 정도 뒤처진 게 현실이다”고 했다.
◇해외, 세제 혜택 줘가며 SAF사업 장려
미국은 현재 모든 수송용 화석연료 공급자를 대상으로 ‘바이오연료 혼합 의무제도’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미국 내에서 SAF를 생산하는 업체에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미국은 2030년까지 연간 114억리터 이상의 SAF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은 2030년까지 항공사 연료 소비량의 10%를 SAF로 대체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중국 역시 2025년까지 5만t의 SAF를 사용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계획을 지난해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뒤늦게 지난 5일 대한항공과 함께 인천~LA 노선에서 SAF 급유 시범 사업을 시작했지만, 정작 SAF는 핀란드 바이오연료 생산기업 네스테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경제성이 없어서 기술 개발을 하고 시장 상황을 보고 있다”며 “보는 관점이나 기준에 따라 우리의 SAF 사업 준비가 늦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혼유를 위한 SAF 생산은 당장 내년에도 가능하도록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속 가능 항공유(SAF)
종전 석유 항공유를 대체해 옥수수, 사탕수수, 폐식용유, 음식 쓰레기 등을 이용해 만든 친환경 항공유.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일반 항공유보다 80%까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