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자체들은 앞다퉈 전기버스 도입을 늘리고 있다. 대부분 저상버스로 제작돼 장애인 교통권을 확보할 수 있고, 탄소 배출 줄이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2057대의 전기버스를 도입했다. 경기도는 버스 회사가 전기버스 1대를 구매할 때마다 최대 1억120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 여기에 환경부 보조금(7000만원), 국토부의 저상버스 보조금(9200만원)을 더하면 대당 4억원 정도를 하는 전기 버스 1대에 2억7400만원의 정부·지자체 보조금이 나간다. 문제는 보조금 상당 부분이 하이거·비야디·중국중차 등 중국 업체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경기도에 도입된 전기버스 중 절반이 넘는 1074대가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중국 전기버스 업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4년간 1291억원에 달한다.

전기버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친환경 이동 수단은 물론, 최근 인력난으로 도입이 느는 서빙 로봇이나 농업용 드론 등에서도 중국산 제품 점유율이 늘고 그에 따른 보조금이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는 “보조금 지급에 국내 업체에 특혜를 줄 경우 통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첨단 산업 생태계를 보호·육성하기보다 보급에만 치중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중국 업체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며 “중국산 탓에 태양광 산업 생태계가 망가진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픽=양진경

◇환경부 전기버스 보조금 36%가 중국 업체로

중국산 전기차는 전기 버스·이륜차 등을 중심으로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가고 있다. 17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국내 등록된 전기버스는 2075대인데 이 중 중국산은 868대로 42%에 달했다. 또 지난해 판매된 전기 이륜차의 44%가 중국산이었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까지 환경부가 지급한 전기버스 보조금의 35.7%인 1151억원이 중국산에 지급됐다.

최근에는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도 점점 늘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생산한 자사 전기차 모델 Y를 지난달 25일부터 국내에 들여오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코나 일렉트릭, 기아의 니로 EV·레이 EV, KG모빌리티 토레스 EVX 등도 모두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했다. 이들 차량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대당 최대 68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 대한 보조금 지급 액수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상공인과 농민들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서빙 로봇, 농업용 드론 역시 정부 보조금 상당 부분이 중국산 제품 구매에 사용됐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2020년부터 서빙 로봇을 구매하는 소상공인에게 제품 단가의 7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9억2000만원이 지급됐는데, 이 중 39.6%인 7억6000만원이 중국산 서빙 로봇 구매·대여에 쓰였다.

농업용 드론의 경우 중국산 제품에 들어가는 보조금 비중이 절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기계를 구매하려는 농민에게 판매 가격의 70% 한도로 융자를 지원하는 농기계 구입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산 드론에 대한 융자 지원이 시작된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농업용 드론 구매를 위해 지원된 융자는 143억9000만원이다. 이 중 85.7%인 123억4000만원이 중국산 드론 구매에 지원됐다. 농민들이 구매한 농업용 드론 925대 중 중국산이 770대(83%), 한국산은 155대(17%)였다.

◇ “보조금 지급 기준, 세심한 설계 필요”

드론이나 서빙 로봇은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중국산이 국산 제품을 앞선다는 평가도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용 드론의 경우 국산 제품이 중국산보다 가격이 싸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술이 월등하지도 않아 농민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보조금 지급 요건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전기 버스 보조금 지급에 탑재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에 따라 보조금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중국산 전기 버스에는 에너지 밀도가 낮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탑재된다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소진공은 올해부터 서빙 로봇 제공 업체를 선정할 때 국산 로봇 업체에 가산점을 부여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 생태계를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세부적인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IT 업체 관계자는 “일정 비율 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제품이나 국내 조립·생산 제품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늘리는 등 좀 더 세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금희 의원은 “보조금 지급에서 산업‧경제 기여도를 측정하는 항목을 반영하는 등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