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인프라코어는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 주도로 건설 중인 신도시 ‘네옴시티’에 53t급 초대형 굴착기 30대, 42t급 대형 휠로더 50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최근 체결했다. 네옴시티 공사를 수주한 현지 건설업체가 한국 굴착기를 구매한 것이다. HD현대인프라코어가 현재까지 사우디에 공급한 굴착기·휠로더·굴절식 덤프트럭은 총 846대로 전년 동기(558대)의 1.5배. 세계 1위 업체인 케타필라를 제쳤다.
HD현대건설기계도 네옴시티 프로젝트 중 하나인 ‘더 라인’ 공사에서 40t급 굴착기 12대, 대용량 버킷(5.6㎥) 휠로더 5대 등 50대를 수주해 지난달 공급을 마쳤다.
네옴시티뿐만이 아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최근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 개발, HD현대인프라코어는 브라질 철도 사업에도 장비를 납품했다. 최근 세계 곳곳에 신도시·인프라 건설이 잇따르고, 첨단 제조업 관련 광산 개발과 공장 건설이 늘어나면서 이처럼 한국이 만든 굴착기·덤프트럭 같은 건설기계가 호황을 맞고 있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K굴착기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살타주에서 리튬 채굴을 위해 개발 중인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현장에는 HD현대건설기계가 지난 7월 한국에서 보낸 초대형 건설 장비가 다음 달 도착한다. HD현대는 최대 높이가 11m에 이르는 50t급 굴착기 6대와 300마력의 힘을 내는 휠로더 3대, 적재 중량이 41t에 달하는 굴절식 덤프트럭 10대 등을 해발 4000m 이상 고지대인 이곳에 보내기 위해 3개월에 걸친 운송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육로에선 25t급 저상 트레일러로 실어나르고, 바다에선 자동차 운반선인 로로선으로 운반했다. 다음 달 초 아르헨티나 자라테항에 도착하면 다시 트레일러에 실려 염호가 있는 고지대로 이동한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최근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 인프라 입찰 프로젝트에서 대표 브랜드인 디벨론의 중형 굴착기 29대를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외에도 마투그로수주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서 80t과 53t급 초대형 굴착기 22대 등 총 51대를 수주했다. 브라질 주정부 측에서 자체 생산한 엔진을 탑재한 제품을 요구한 것이 경쟁 업체를 제치는 요인이 됐다. 꾸준히 엔진을 독자 개발해온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10t 이하 소형 굴착기와 로더 등 소형 건설기계로 유명한 두산밥캣도 최근 북미 건설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두산밥캣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일자리법, 반도체법, IRA 같은 각종 제조업 부흥책으로 건설 붐을 일으키면서 수주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보다 먹을 게 많다
미국 소형 건설기계 브랜드로 인지도가 높은 밥캣을 인수한 두산밥캣과 달리, 토종 한국 브랜드인 HD현대 계열은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았다. 북미·유럽 등 주요 시장을 케타필라·존디어·히타치·볼보 같은 글로벌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현지 장비 업체들이 성장하고, 부동산 경기도 크게 꺾이면서 중국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 우리 기업들이 북미·중동·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다른 시장을 새로 개척하면서 다시 기회가 열리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네옴시티 현장에 판매·서비스 센터를 구축하고, 콜롬비아·가나·브라질 등 국제공항에 옥외광고를 게시하고 있다”며 “인프라코어와 건설기계 제품을 묶어 판매하는 ‘패키지 판매’로 시너지도 내고 있다”고 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지난해 매출 52%를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같은 신흥시장에서 올렸다. 2년 전 30%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북미, 유럽 시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반면 중국 매출 비율은 29%에서 8%로 줄었다. HD현대인프라코어 역시 신흥 시장 매출이 2년 만에 17%에서 33%로 늘었고, 중국 매출은 46%에서 16%로 줄었다.
업계에선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은 조선업만큼 큰 시장으로, 한국 업체들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건설기계 글로벌 시장 규모는 1296억4200만달러(약 172조원)로, 글로벌 조선 시장인 1226억4000만달러보다 컸다. 한국 조선업은 이미 세계 1위지만, 건설기계업에선 두산밥캣이 11위, HD현대가 12위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며 “건설기계는 아직 먹을 게 많은 시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