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국내 1위 이동통신업체인 SK텔레콤 측과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업체인 미국 넷플릭스가 3년 넘게 ‘망 이용료’를 놓고 벌여온 소송을 18일 서로 취하했다. ‘망 이용료’는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슈로, 유튜브·넷플릭스·페이스북처럼 막대한 데이터양을 사용하는 특정 서비스 업체들에 통신사들이 네트워크 인프라(망) 유지 비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 진행된 SK텔레콤 측과 넷플릭스 간 소송은 전 세계적으로도 ‘망 이용료’를 둘러싼 통신사와 빅테크 간 최초의 법정 다툼이었던 만큼 큰 주목을 받아왔다.

SK텔레콤과 직접 소송 당사자였던 자회사 SK브로드밴드는 18일 넷플릭스와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모든 분쟁을 종결하고 미래지향적 전략 파트너로서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전 세계 OTT 시장 부동의 1위인 넷플릭스와 협업할 기회를 얻게 됐고, 상대적으로 소송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했던 넷플릭스는 자칫 망 이용료를 내게 될 수도 있었던 사법적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업계에선 “소송을 계속 끌고가기보다는 서로 손을 잡는 게 ‘윈-윈(win-win)’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래픽=김성규

◇”싸움보다 협력이 더 득” 판단

실제로 SK텔레콤이나 SK브로드밴드는 그동안 소송전 때문에 국내 경쟁사인 KT·LG유플러스와 달리, 넷플릭스와 협업 비즈니스를 아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내년부터 SK브로드밴드의 IPTV(인터넷TV) 서비스 가입자들에게 넷플릭스 콘텐츠를 제공하게 된다. SK텔레콤 역시 자사 가입자들을 위한 이동통신 서비스와 넷플릭스 이용이 가능한 결합 요금제를 내놓을 예정이다. 또 양측은 서비스에 인공지능(AI) 적용 등과 같은 기술 협력도 모색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업계에선 넷플릭스가 소송 취하 과정에서 ‘망 이용료’라는 명목 대신 다른 명칭으로 SK브로드밴드에 일정 금액을 지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1심에 이어 2심까지 패하면 더욱 상황이 불리해질 수 있는 만큼 타협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넷플릭스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1심을 패한 뒤 다른 나라들에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면서 망 이용료가 이슈화되기 시작했다”며 “넷플릭스 입장에선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불리한 최종 법원 판결이 나오는 걸 피해가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2020년 4월부터 3년 넘게 소송

앞서 양측의 법정 다툼은 지난 2020년 4월 시작됐다. 당시 국내 SK브로드밴드 인터넷 가입자들은 넷플릭스가 일본에 설치한 동영상 콘텐츠 서버를 통해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SK브로드밴드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 전송 비용을 넷플릭스에 요구한 게 발단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콘텐츠 저장 서버를 미국에만 두지 않고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 만드는 데 비용을 투자한 만큼, 따로 망 이용료를 줄 수 없다”며 국내 법원에 자신들은 SK브로드밴드에 줄 채무(망 이용료)가 없다는 확인 소송을 냈고, 이후 법적 다툼이 3년 넘게 이어졌다. 넷플릭스가 일본에 설치한 서버와 한국 내 넷플릭스 이용자들 사이에 사용된 망 인프라 비용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이 소송이 ‘과연 통신사가 넷플릭스와 같은 빅테크에 망 이용료를 받을 수 있느냐’는 첫 법정 싸움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통신업계에선 ‘망 이용료’ 이슈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떠올랐다.

넷플릭스는 2021년 6월 1심에서 패하자, 바로 그다음 달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그동안 진행돼왔다. 유리한 고지에 오른 SK브로드밴드는 1심 이후인 지난 2021년 9월 넷플릭스를 상대로 법원에 “구체적 망 이용료를 결정해달라”는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으로 ‘맞불’을 놓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