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산업대전환포럼이 열렸다. 왼쪽부터 김우승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대표, 김현석 전 삼성전자 사장, 이성용 이서디리틀 한국대표,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태경기자

“우리는 지난 20년간 새로운 산업·기술을 못 만들어냈다. 산업 구조는 바뀐 게 하나도 없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김현석 전 삼성전자 사장)

산업통상자원부 제안으로 한국 산업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80여 명의 민·학·연 전문가가 모여 출범한 산업대전환포럼의 6개 미션 좌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본지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주최한 좌담회에서 이들은 “지난 10개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 산업·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에 대한 탄식이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각 미션의 좌장들은 한국 산업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해 혁신·인재·연구개발(R&D)의 ‘3대 결핍’을 꼽으며, 이 분야들에서 운명을 건 대전환 없이는 한국의 미래도 없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의 강점으로 꼽던 것이 이젠 한국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좌담회에는 6개 분과 좌장을 맡은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투자), 김우승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인력), 김현석 전 삼성전자 사장(생산성),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기업성장), 이성용 아서디리틀 한국대표(글로벌),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 대표(신비즈니스)가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한국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선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고, 산업대전환이 그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10개월간 경제 단체, 국책연구기관 전문가 등 실무진을 포함해 8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와 미처 보고서에 담지 못한 내용을 이날 좌담회에서 풀어냈다. 지난달 29일부터 본지가 연재를 시작한 ‘한국 경제의 뉴 엔진’ 시리즈를 두고서도 “우리 경제가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본지가 주최한 좌담회에 참석한 산업 대전환 포럼 6개 분과 좌장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행사 시작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앞줄부터) 김현석 전 삼성전자 사장, 이성용 아서디리틀 한국 대표,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오른쪽 앞줄부터)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 대표, 김우승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이태경 기자

◇R&D의 결핍.. ”생색 내기 중복 투자 없애야”

미션의 좌장들은 R&D와 관련해 “중복 투자, 생색 내기 투자를 없애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석 전 사장은 “우리나라엔 눈먼 돈이 아주 많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중복 투자, 생색 내기 투자가 많아 정작 필요한 곳엔 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내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중경 회장은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 항로를 잘 잡고 가기 위해선 중심을 잡아줄 조직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현석 전 사장은 “과거 삼성의 미래전략실처럼 정부 내 중복 사업 정리 등을 조율하는 곳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재의 결핍…. ”교육 혁신보다 강의 혁신을”

한국 산업의 대전환에 반드시 필요한 개혁 요소로 인력 문제를 꼽았다.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 우수한 인적 자원은 큰 강점이었지만 이젠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에다 후진적인 교육 제도로 인해 큰 약점이 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러닝 트랜스포밍(강의 혁신)’이 제안됐다. 김우승 원장은 “인력 미스 매치 문제 해결을 위해선 (거창한) 교육 혁신이 아니라 산업계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우는 강의 혁신이 필수”라고 했다. 이어 그는 “산학(産學) 협력이 활발하다고 하지만 정작 산학 협력보다는 (일방적인) 지원이 더 많은 실정”이라고 했다. 조선업과 같이 인력 부족이 심각한 산업은 동남아시아 등 인력 수출국 현지에 국내 기업들이 교육 훈련 기관을 만드는 방안도 제시했다.

◇혁신의 결핍..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

박재완 이사장은 산업 정책을 추진할 때 민간의 시각, 실무자의 시각을 주문했다. 그는 “일본은 거의 과 단위, 사무관 단위로도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큰 정책, 청사진, 백서가 나올 때도 늘 민간 자문위의 중지를 모은다”고 했다. 정책의 대의명분은 물론 추진 동력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기존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중경 회장은 “최근 기업인들에게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는 말”이라며 “재래식 무기 산업이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것에서 보듯이 기존 산업의 경쟁력 강화 노력도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김우승 원장은 “기술은 정복당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처럼 첨단 산업은 누가 발 빠르게 선점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앨 가칭 ‘첨단산업규제해결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국가투자지주회사, 전직 관료 보내선 성공 못 해

6개 미션, 46개 과제 중 하나인 국가투자지주사 설립과 관련해 최고위직에 관료 출신을 보내선 100%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중경 회장은 “중동이나 중국 국부펀드가 성공하는 걸 보면 정부는 출자만 하고 나머지는 CEO에게 맡겨야 한다”며 “투자 회사를 만들어놓고 전직 관료를 잔뜩 집어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성용 대표는 “우리나라는 돈이 많은 나라다. 그런데 최고의 펀드매니저를 데려오려고 해도 국민연금과 같은 국내 공공기관은 보수가 너무 작고, 임기가 짧은 게 문제”라고 했다.

본지의 ‘한국 경제 뉴 엔진’ 시리즈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박재완 전 장관은 “SMR(소형모듈원전) 확산을 위한 인허가 등 정책 정비와 함께 상용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이성용 대표는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에서 ‘한국형 표준체계’를 세계화하고, 탄소 중립 국면에서 ‘K-CFE(무탄소에너지)’의 확산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일평 대표는 “에너지 분야에 해당하는 배터리, SMR, 이차전지소재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연관된 친환경 조선과 뉴플라스틱은 앞으로 경제적 효과를 크게 만들어낼 유망 분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