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거치며 한국에서 위스키·와인 등 인기가 크게 높아졌지만, 이들 술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걸리 등 전통주 외에는 온라인 판매가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일본·프랑스 등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종(酒種)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문이 가능하다. 위스키 발렌타인을 수입·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 프란츠 호튼 대표는 “한국이 대중음악, 드라마 등 각종 분야에서 놀라운 혁신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류 산업은 규제로 인해 혁신 수준이 뒤처져 있어 안타깝다”며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를 위해 규제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ECCK 규제 환경백서 2023' 발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규제 환경에 대한 유럽 기업들의 건의사항을 담고 있는 2023년도 ECCK 백서를 발표했다. ECCK는 2015년부터 매년 한국 정부에 규제 개선을 건의하는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 백서에는 자동차·헬스케어·식품·주류·에너지·보험 등 17개 산업군에서 100개의 건의사항을 백서에 담았다.

ECCK 건의사항은 2019년 180개에서 2020년 145개, 2021년 114개, 지난해 96개로 최근 수년간 감소하는 추세다. 2012년 설립된 ECCK에는 유럽 기업 약 400곳, 직원 5만명이 소속돼 있다.

토마스 카소 네슬레코리아 대표는 “많은 글로벌 식품 기업들이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식품 용기에 사용될 수 있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국내에서 생산된 것으로만 제한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생산된 재활용 플라스틱을 식품 용기로 사용한 제품은 수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화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수준의 규제라고 평가받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에 대한 완화 요청이 많았다. 현재 화평법에 따르면 연구·개발(R&D)용으로 사용한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사후처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보고서 제출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화학물질을 처리하고 수년 뒤에도 보고서 제출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ECCK 화학위원회 측은 “R&D가 끝나고 5년이 넘게 지난 화학물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후처리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보고서 제출 대상 기한을 5년으로 한정해달라”고 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화장품 산업에 대해서도 7건의 건의가 제기됐다. 자외선 차단, 미백, 주름개선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기능성화장품은 정부가 화장품 효능을 사전에 승인하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제품 개발 속도와 다양성이 중요한 화장품 산업에서는 지나친 규제이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달라는 건의가 제기됐다. 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품 광고에 ‘디톡스’ ‘홍조·홍반 개선’ 등의 표현은 의약품과 오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못쓰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필립 반 후프 ECCK 회장은 “한국과 유럽의 2022년 무역 규모는 1370억유로로, 2010년 610억유로에서 2배 이상 성장했다”며 “한국 정부는 지난해 관료주의를 철폐하고 친 기업 정책을 주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는데, ECCK 백서가 한국 정부와의 건설적인 소통의 도구로써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