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동안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와 공장을 가동 중인 유턴 기업은 총 54곳이다. 1년에 5곳 남짓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각국이 산업 기반 확대를 위해 리쇼어링에 나서자 이를 쫓아 2013년 말 지원법까지 만들며 유턴 기업 유치에 나선 정책의 ‘10년 성적표’다.
우리 정책이 헛도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훌쩍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칩스법 등을 만들어 자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 기업의 현지화까지 추진하고, EU(유럽연합)는 유럽판 IRA라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내놓았다. 일본은 세제 혜택을 통해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기반을 자국에 유치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340곳이었던 유턴 기업이 2021년 1844곳까지 늘었고, 일본도 2018년 612곳이 돌아오는 등 해마다 600~700곳씩 기업이 돌아온다.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대만도 한 해에 돌아오는 유턴 기업은 연평균 72곳이다. 유턴을 선언한 기업이 2021년 26곳, 지난해 24곳에 그친 우리와는 격차가 크다.
각국은 기존 문법을 뛰어넘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존 혜택을 확대하는 수준에 머물면서 성과도 미미하다. 까다로운 평가를 거쳐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은 기업 중에도 5곳은 폐업하거나 유턴을 포기할 만큼 정부의 지원책도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턴 기업 1년에 5곳 들어올 때, 해외로는 4000곳 나가
20일 국회 양금희 의원실과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 8월까지 국내 복귀를 선언한 유턴 기업은 총 160곳이다. 이 중에서도 16곳은 돌아오고 나서 폐업했고, 7곳은 아예 유턴을 포기해 버려 8월 말 기준 남은 유턴 기업은 137곳에 그친다. 그마저도 실제로 들어와 공장을 가동하는 기업은 54곳에 불과하고, 절반이 넘는 83곳이 아직 조업을 준비하고 있을 뿐 가동은 먼일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세운 법인은 총 2만8670곳에 달한다. 2019년 한 해에만 4018곳까지 기록한 가운데 올해도 1분기에만 639곳이나 새로 생겼다.
◇경쟁력 낮은 기업 유치하는 우리, 경쟁력 높은 기업 유치하는 해외
한때 ‘유턴 기업 1호’로 잘 알려졌던 파워이앤지의 장영문 전 사장은 이젠 월 205만원을 받는 최저임금 근로자로 전락했다. 중국 광둥성에서 사업하다 2012년 전북 군산으로 터전을 옮기고 수십억 원을 투자했지만, 결국 2019년 5월 회사 문을 닫았다. 장 전 사장은 “지금 전라북도와 군산시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유턴 기업 숫자 늘리기에만 눈이 멀었던 정책 당국의 지원이 부실해 나는 피해자가 됐다”고 주장한다.
유턴 제도는 주얼리, 신발 등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들을 대거 끌어들이며 시작부터 스텝이 꼬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해인 2014년 선정된 27곳 중 12곳이 폐업과 사업 포기로 유턴 기업 인증이 취소됐을 정도다. 장석인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왜 유턴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목표 없이 해외에서 한다고 하니 제도를 도입했지만, 선정이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는 유턴 기업이 규모도 클 뿐 아니라 확대 추세다. 미국은 애플과 보잉, GE 등 첨단산업 기업들이 자국으로 복귀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포드는 해외 공장 건설을 철회하고, 미시간에 스마트 공장을 추진하고 있고, 인텔은 지난해 오하이오에서 반도체 공장 2개를 착공했다. 일본도 엔화 약세 속에 해외로 떠났던 기업들이 속속 돌아온다. 파나소닉이 2015년 중국에 있던 가전 공장을 국내로 옮겼고, 혼다는 소형 오토바이 생산 공장을 2017년 구마모토 공장으로 이전했다. 로봇 시장의 강자인 세이코엡손은 현재 1대4인 일본과 중국 비율을 2025년까지 2대3으로 바꾸기로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경쟁력 높은 기업의 유턴을 위해선 지속적인 세금 감면과 규제 개선 등 강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쇼어링
해외에 있는 국내 기업의 생산 시설을 국내로 이전하는 것. 이렇게 돌아오는 기업을 유턴 기업이라고 한다. 싼 인건비나 큰 시장을 찾아 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