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위스키·와인 인기가 크게 높아졌지만, 이들 술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막걸리 같은 전통주 외에는 주류 온라인 판매를 법으로 막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온라인을 통해 술을 구입하는 것을 막고, 국민 건강 저해 등 음주로 인한 부작용을 막겠다는 이유다. 반면 미국·영국·일본·프랑스 등 대부분의 OECD 국가는 주종(酒種)과 무관하게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다. 위스키를 수입·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 프란츠 호튼 대표는 “한국이 대중음악, 드라마 등 각종 분야에서 놀라운 혁신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류 산업은 규제 탓에 혁신이 뒤처져 있다”며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를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규제 환경에 대한 유럽 기업들의 건의 사항을 담은 2023년도 백서를 발표했다. 2012년 설립된 ECCK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유럽 기업 약 400곳, 직원 5만명이 소속돼 있다. 2015년부터 매년 한국 정부에 규제 개선을 건의하는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 백서에는 자동차·헬스케어·식품·주류·에너지·보험 등 17개 산업군에서 100개의 건의 사항을 백서에 담았다.

그래픽=백형선

토마스 카소 네슬레코리아 대표는 “많은 글로벌 식품 기업이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식품 용기에 사용할 수 있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국내 생산한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식품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해외에서 생산된 재활용 플라스틱 수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화장품 시장 규제 개선 요청도 나왔다. 자외선 차단, 미백, 주름 개선 등 기능성 화장품은 정부가 효능을 사전에 승인하도록 규제하는데, 제품 개발 속도와 다양성이 중요한 화장품 산업에서는 지나친 규제이기 때문에 폐지해달라는 것이다. 또 현재 한국에서는 의약품과 혼동될 수 있다는 이유로 화장품 광고에 ‘디톡스(독소 배출)’ ‘홍조·홍반 개선’ 등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가이드 라인을 재검토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화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수준의 규제로 평가받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에 대한 완화 요청이 많았다. 현재 화평법에 따르면 연구·개발(R&D)용으로 사용한 화학물질은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나중에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서 제출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화학물질을 처리하고 수년 뒤에도 보고서 제출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ECCK는 “R&D가 끝나고 5년이 넘게 지난 화학물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후 처리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필립 반 후프 ECCK 회장은 “한국 정부는 지난해 관료주의를 철폐하고 친기업 정책을 주도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며 “이런 정책이 실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