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도요타와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글로벌 톱5 완성차 회사(도요타·폴크스바겐·현대차·르노닛산·스텔란티스) 모두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 이달 1일 출범 2년을 맞은 SK온은 미 포천지 선정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업’ 1위에 선정됐고, 2년 새 분기 매출은 3조6961억원으로 3.5배 성장했다. 삼성SDI도 지난달 말 미국 스텔란티스 합작 법인 2공장에 2조6556억원 추가 투자를 발표하며 북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활약으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1000조원대 수주 잔고’를 달성하게 됐다. 이는 한국 배터리 업계가 수십 년간 연구·개발과 실패를 통해 기술을 다지고, 선진 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해 온 결과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돌다리를 두드리다가 무너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중한 기업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도요타는 2020년 하반기부터 LG와 공급 논의를 시작한 뒤, 기술을 검증하는 데에만 2년의 시간을 거쳤다”며 “그 과정에서 충북 오창뿐 아니라 폴란드, 미 미시간 공장까지 둘러보며 LG의 자동화된 설비를 보고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선양국 한양대 교수는 “일본은 자국 기술이 최고라는 자존심이 강하다”며 “이번 계약은 도요타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배터리 기술력과 탄탄한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LG 엔솔, SK온, 삼성SDI의 ‘배터리 어벤저스’ 탄생
미국 동부 지역에는 ‘배터리 벨트’가 조성되고 있다. 미시간·인디애나·오하이오·테네시·켄터키·조지아주에 이르는 곳에 10개 이상의 배터리 공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 배터리 공장 건설을 주도하는 건 한국 배터리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 8곳 342GWh, SK온이 4곳 183GWh, 삼성SDI가 3곳 97GWh 규모의 공장을 운영·건설 중이다. 현재 북미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테슬라에 공급하는 파나소닉이 1위지만, 한국 3사의 공장이 다 지어지면 북미 시장을 70% 점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 배터리 어벤저스들이 탄생한 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LG는 1995년 이차전지 독자 개발에 착수한 지 3년 만인 1998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소형 리튬이온전지 양산에 성공했다. 해마다 수백억원씩 쌓이던 사업 적자 규모가 2005년 2000억원까지 커졌지만, 고 구본무 당시 LG 회장은 “이건 우리 미래를 위한 사업”이라며 밀어붙였다.
SK와 삼성도 2000년 소형 리튬이온전지를 양산하며 판을 키웠다. 3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한국 배터리 3사의 성공 배경에는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개발에서 일본보다 앞서 나갔다는 점이 있다. LG는 2000년부터 미국에 연구센터를 설립해 중대형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SK온은 2004년 하이브리드차용 중대형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했고, 삼성SDI는 2008년 보쉬와 합작해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선제 공략 밑거름...북미 70% 점유 예정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2009년 LG의 GM 수주였다. 2000년 설립한 미 배터리 연구센터의 실력을 인정받아 맺게 된 GM과의 인연은 LG가 북미에서 최대 양산 능력을 확보한 밑거름이 됐다. LG는 포드, 르노, 아우디 등 다수 글로벌 완성차와 잇따라 계약을 체결했고, GM과도 대형 합작을 이어갔다. 이때부터 배터리 분야에서 일본을 추격하던 한국은 전기차 분야에선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SK온도 치열한 수주 경쟁에 나서면서 GM의 경쟁사인 포드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했다. LG와 SK가 대규모 수주를 따내자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장에 신중하던 삼성SDI도 수주전에 뛰어들어 스텔란티스·GM과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BMW와 오랜 인연으로 전기차 협력도 하고 있는 삼성SDI는 ‘프리미엄 가격 정책’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