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의 P6 배터리 이미지

배터리 제조사 삼성SDI가 2026년부터 7년간 현대차의 유럽 시장 판매용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냈다. 현대차와 첫 배터리 공급 계약으로 전기차 약 50만대 규모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간 경쟁사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과 비교해 뒤처져 있다는 우려가 나왔던 삼성SDI가 북미·유럽 공장 증설에 이어 현대차와 협력을 강화하며 본격적인 추격에 나섰다는 평가다.

그래픽=양진경

◇후발 주자에도 수주 밀렸지만 고부가가치 배터리로 승부

삼성SDI는 2024년 양산 예정인 ‘P6(6세대 각형 배터리)’를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해 현대차에 공급한다. P6는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의 니켈 비율을 91%로 높이고 음극재에 독자 소재를 적용해 배터리 성능을 높였다. P6가 탑재될 전기차 모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에도 강세를 보이는 프리미엄 차종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후발 주자인 SK온에도 수주 잔고에서 밀린 삼성SDI가 프리미엄 전기차 배터리로 활로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중에서 삼성SDI는 최근 경쟁사보다 공장 증설 등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업계가 추산한 삼성SDI 수주 잔고는 약 260조원으로, LG엔솔(440조원)보다 크게 적다. 2021년 출범 후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SK온(290조원)보다도 적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빠르게 확대하는 전기차 시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컸다.

전기차와 배터리 격전지인 북미에서 가동·조성 중인 생산 시설 규모도 삼성SDI는 97GWh(기가와트시)로, LG엔솔(342GWh), SK온(183.5GWh)보다 작다. 북미 지역 선제 투자로 올해부터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세제 혜택을 받는 LG엔솔, 다소 늦었지만 공격적인 대규모 증설을 시작한 SK온과 대비됐다. 삼성SDI의 북미 공장은 2025~2027년에야 가동이 가능하다.

다만, 삼성SDI는 경쟁사 대비 높은 프리미엄 전기차 매출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P5 배터리는 독일 BMW 뉴i7·iX와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 완성차 기업의 최신 프리미엄 전기차에 탑재됐고, 삼성SDI의 사업 축도 스마트폰 배터리 같은 소형 전지에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중·대형 전지로 안정적으로 전환됐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달 “삼성SDI는 프리미엄 전기차 매출 비율이 60%를 넘기 때문에 전기차 수요 약세에 상대적으로 영향이 작다”며 “주력 시장인 프리미엄 전기차는 (중국 기업의) 중저가용 배터리 침투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효자 상품 ‘폰 배터리’ 매출 넘은 車 배터리

견고한 프리미엄 전기차 수요에 더해 원통형·각형 배터리 경쟁에서 삼성SDI가 강점을 지니는 각형 배터리를 택하는 완성차 기업이 늘어나면서 삼성SDI는 2022년 매출 20조1241억원, 영업이익 1조8080억원으로 연간 최대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8.98%로 배터리 3사 중 가장 높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인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수익성 중심의 질적 성장을 강조해왔는데, 작년 전기차 배터리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효과”라고 했다. 최대 매출 고객도 스마트폰 배터리 고객사인 삼성전자에서 유럽 자동차 업체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배터리 3000~4000개가 전기차 배터리 1개 매출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삼성SDI 관계자는 “배터리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를 2027년부터 양산해 기술 격차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삼성SDI는 이번 계약으로 BMW·스텔란티스·GM·폴크스바겐·볼보·리비안에 이어 현대차도 고객사로 두게 됐다. 현대차는 각형 배터리 등 폼팩터(형태) 다변화가 가능해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이례적으로 서로 사업장을 방문해 미래차 사업에 대한 협력 논의를 이어온 결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