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뉴시스

81조원, 72조원.

미국의 오일 메이저기업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이번 달 초대형 인수·합병(M&A)에 쏟은 금액이다. 엑손모빌은 지난 11일 595억달러(약 81조원)에 미국 셰일 시추·탐사 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리소시스를 샀다. 23일엔 셰브론이 석유개발업체 헤스를 53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헤스는 최근 10년간 발견된 유전 중 최대로 꼽히는 남미 가이아나에 대규모 광구를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의 M&A는 2016년 영국 석유회사 셸이 석유·가스 기업 BG그룹을 700억달러에 인수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두 회사의 잇따른 초대형 M&A는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확대에 나서면서 머지않아 석유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2010년대부터 사업 다각화를 위해 태양광·풍력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BP·셸(영국), 토탈에너지스(프랑스) 같은 유럽 석유회사들이 석유·가스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일 메이저사들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석유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쪽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피크 오일은 언제?

29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하루 1억70만 배럴이던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코로나로 쪼그라들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억 배럴을 밑돌았다. 하지만 올해는 1억230만 배럴로 늘어나면서 역대 최대치 경신이 예상된다. 탄소 중립 노력에도 석유 생산·소비는 더 늘어나는 것이다.

석유 생산이 최대를 기록한 뒤 꺾이는 시점인 ‘피크 오일’(Peak Oil )은 예측 기관마다 차이가 있다. IEA는 지난 24일 펴낸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으로 석유 수요는 2028년 하루 1억570만 배럴로 정점을 찍은 뒤 2030년 1억150만 배럴, 2050년 9740만 배럴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고, 청정에너지 또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그래픽=백형선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피크 오일 시점은 이보다 뒤다. OPEC는 이달 초 “전 세계 석유 수요는 2030년 1억1200만 배럴, 2045년 1억1600만 배럴로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항공유와 석유화학 원료 등의 대체재를 찾기 어렵고, 특히 경제 성장이 빨라지는 아프리카, 남미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석유 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진 것도 석유 수요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석유 수요는 꾸준할 것”

IEA와 OPEC는 피크 오일 예상 시점에선 차이가 있지만 공통으로 석유 수요는 지금처럼 꾸준하고,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헤스를 인수한 마이크 워스 셰브론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며 “석유 수요는 2030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셉 래시터 전 하버드대 교수는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 발전과 복지를 위해 발전소를 짓고, 정유공장을 건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비용은 현실의 문제”라며 “석유 수요가 급작스럽게 줄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업계, 합종연횡 가능성도 솔솔

업계 1~2위인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이번 베팅이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걸쳐 BP와 아모코, 엑손과 모빌, 셰브론과 텍사코가 합치며 초대형 오일 메이저사가 된 것처럼 석유업계에서 초대형 M&A가 잇따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같은 영국계인 셸과 BP의 합병 가능성까지 나온다. 아르준 머티 베리텐 애널리스트는 “대규모 M&A를 한 엑손모빌, 셰브론과 경쟁하려면 셸과 BP도 합병을 통한 몸집 키우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이번 M&A를 두고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한 파리협정 실패에 베팅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크 브라운슈타인 환경보호기금 부대표는 “석유·가스기업들이 에너지 전환보다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마지막까지 수익을 짜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배럴당 80달러를 웃도는 고유가 시기에 이뤄진 M&A라는 점에서 국제 유가가 급락할 경우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