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에너지경제연구원·한국동서발전 등 에너지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몰려 있는 울산 중구는 주유소 22곳 가운데 21곳이 셀프 주유소다. 비율로 따지면 95%에 이른다. 이 지역에 근무하는 한 에너지기관 관계자는 “10년쯤 전부터 혁신도시가 조성되며 새로 생긴 주유소들이 대부분 셀프 주유기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전체 주유소에서 셀프 주유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2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주유소 1만865곳 가운데 소비자가 직접 주유하는 셀프 주유소는 5606개로 52%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만 해도 셀프 주유소는 주유원이 기름을 넣어 주는 일반 주유소보다 500개 정도 적었다. 하지만 지난 6월 말 5485개를 기록, 5435개에 그친 일반 주유소를 처음 앞지른 후 격차를 벌리고 있다.

매년 전체 주유소 감소하는 상황에서 셀프 주유소가 증가하는 것은 인건비 급등과 구인난 때문이다. 사실상 최저임금에 연동하는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의 인건비가 10년 사이 배(倍)로 치솟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일반 주유소 가운데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대전 셀프 비율 가장 높고, 전남 가장 낮아

전국 주유소가 1만2898개로 정점을 찍었던 2010년, 셀프 주유소는 374곳으로 2.9%에 그쳤다. 하지만 2019년 650곳 늘어났고, 올 들어서도 10월까지 360개 증가했다. 일반 주유소에서 셀프 주유소로 전환한 숫자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지만, 360곳 가운데 90% 이상은 일반 주유소가 셀프 주유소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생기는 주유소는 대부분 셀프 주유소다. 국내 최대 주유소 네트워크를 보유한 SK에너지의 경우 올 들어 새로 생긴 주유소 5곳이 모두 셀프 주유소였다.

대도시일수록 셀프 비율이 높다. 17개 광역시·도별 중에서는 대전이 총 212개 중 80%인 169곳이 셀프 주유소로 가장 비율이 높았다. 부산(74%), 울산(69%), 인천(68%), 서울(61%) 등이 모두 60%를 웃돌았다. 반면 전남은 849개 중 234개에 그쳐 28%로 셀프 주유소 비율이 가장 낮았다. 제주(34%), 충남(42%) 등은 셀프 주유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으로 꼽혔다. 심재명 한국주유소협회 팀장은 “대도시는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이 심해, 인건비를 줄여 판매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는 곳이 많다”며 “대전은 면적과 인구 대비 주유소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셀프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셀프 주유소는 선진국에선 보편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2년 셀프 주유소 비율이 80%를 넘었다. 일본도 2000년대 초 10%이던 셀프 주유소 비율이 최근 40% 선으로 늘었다.

◇최저임금 가파르게 오르며 불가피한 선택

셀프 주유소 전환은 최저임금이 급등한 2018년부터 큰 폭으로 확대됐다. 2015~2017년 사이 해마다 320~340개 정도 늘었지만 2018년부터는 3년 동안 478개, 650개, 518개 급증했다. 2018~2019년 2년 동안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오른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주유소들이 마진을 줄여서 인건비를 감당하거나, 이마저 어려우면 셀프 주유소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건 강원대 교수는 “셀프로 바꾸면 리터(L)당 30원 정도 기름값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셀프로 전환하면서 늘어나는 영업시간과 인건비 절감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구인난도 셀프 주유소 전환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주유소 사장은 “예전에는 학생들이 주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요즘은 일이 힘들고 피부에도 안 좋다며 주유소는 꺼린다”고 했다.

셀프 주유소가 늘면서 일자리 활용 측면에서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민선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은 “편의점이나 커피숍 등에서 일하기 어려운 고령층 구직자에게는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것”이라며 “갑작스러운 사회 변화가 고용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