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적자 규모가 7조2000억원(별도회계 기준)인데 연간 흑자 전환은 어렵습니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회사채 발행 한도가 꽉 차게 돼 지금처럼 빚을 내 빚을 갚으며 버티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집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내년이 되면 이미 발행한 회사채도 한도가 줄어들며 상환 압박을 받게 된다. 빚조차 내지 못하게 되며 부도 상태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절박하고 시급하다는 얘기다. 4분기(10~12월) 전기요금 인상 여부는 한 달 넘도록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21년부터 쌓인 한전 영업손실은 47조원을 넘는다. 3분기 흑자 전환이 예상되지만 4분기 또다시 조 단위에 가까운 적자가 불가피하다.
◇”추가 자구안 마무리 단계”
한전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지만 부실·방만 경영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도 전기요금 인상 전제 조건으로 한전의 추가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추가 자구안은) 마무리 단계로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며 “이미 진행 중인 한전기술뿐 아니라 추가로 자회사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부동산도 더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모는 수천억원 수준”이라며 “이와 별개로 본사 조직을 슬림화하는 조직 개편도 단행할 방침”이라고 했다. 다만 희망 퇴직은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전은 지난해 20조1000억원 규모 자구안에 이어 지난 5월 각종 설비의 건설 시기를 뒤로 미루고, 경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5조6000억원을 절감하겠다는 자구안을 내놨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내놓은 25조원 규모의 자구안 이행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자체와 협의 등 각종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걸릴 뿐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정부도 회사채 발행액이 한도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는 4분기 요금을 인상할 것으로 본다”면서 “(킬로와트시당) 25.9원 정도는 올려야 적자를 없애면서 부채를 조금씩 줄여갈 수 있다”고 했다.
◇”에너지 분야에도 시장경제 적용해야”
김 사장은 “선거를 앞둔 국면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운 것은) 이해는 한다”면서도 “이런 점 때문에 더더욱 요금 결정을 위한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올리고, 유가가 시장에서 오르내린다고 국민이 정부를 비난하지는 않는다”며 “정부의 부담을 더는 측면에서도 전기요금 결정을 독립기구에 맡기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던 시기에 코드를 맞춰가며 재무구조를 부실하게 한 한전의 원죄(原罪)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국제 에너지 가격의 움직임에 맞춰 요금을 조정하겠다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선 시행 첫 분기인 2021년 1분기부터 3원을 낮췄다. 2분기부터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이때는 인상을 포기하며 이후 부담을 키웠다. 지난해엔 이미 하루 이자 부담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데도 회사채를 계속 찍어냈고, 발전기업들의 원성 속에서 SMP(전력시장가격) 상한제까지 시행했다.
김 사장은 “현재의 공기업 체제도 답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민영화도 불가능하다”며 한전의 미래로 이른바 국민기업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기요금 물가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 돼”
김 사장은 “전기요금을 물가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전기요금에도 시장 원리가 작동할 때, 에너지 산업도 신성장동력으로 우리 경제에 기여하고, 전력 생태계 붕괴도 막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동안 한전이 공기업이란 지위에 안주하며 많은 잘못을 범했지만, 전력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는 “요금 인상은 단지 우리(한전) 살겠다고 하는 주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사장은 4선(17~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62년 한전 역사에서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이다. 기업 경영이나 전력 산업 관련 경력이 없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