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방위산업 전시회 ‘AUSA 2023′이 열린 10월 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의 ‘월터 E. 워싱턴 컨벤션 센터’ 앞. 오전 9시부터 제복을 입은 군 관계자 수백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최강 군사력의 미국 육군협회가 매년 주최하는 AUSA는 방산업계에선 IT·가전 전시회 ‘CES’와 같은 위상으로 통한다.
연간 1000조원대 국방 예산을 집행하는 미국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미국·독일·영국 등 전 세계 80여 국, 650여 방산 기업에서 온 관계자 3만명 이상이 참여한다. 방산 기업들이 숨겨온 비장의 신형 무기를 일제히 선보이는 ‘총성 없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장기화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다 개회 직전 발생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전례 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6·25전쟁 당시 소총 하나 만들지 못했고 이후에도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원조 장비에 의존했던 한국은 이날 세계 최강 군사 대국 미국에까지 무기를 팔기 위해 행사장 중앙에 230㎡(약 70평) 규모 부스를 차렸다. 이 부스에 많은 글로벌 방산 관계자들이 쉴새 없이 찾았다.
‘K방산은 이미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2022년 CNN)’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올해 6대 방산 수출국, 자유 진영으로 치면 미국·프랑스·독일 다음인 4위를 목표로 한다. 무역 순위보다 앞서는 수치다. 한국 방산은 작년 역대 최대인 173억달러(약 22조6800억원) 수출을 기록했고, 현재 수주 잔고는 100조원에 달한다.
핵무장한 120만 북한군과 맞서야 하는 특수한 안보 환경 영향으로 K방산은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급성장했다. 지상군 무기인 장갑차·전차·화포는 국내 독자 개발과 생산가능 수준을 넘어 세계 상위권 수준으로 도약했다. 항공 분야는 1970년대부터 전투기·헬기 기술 이전 생산을 바탕으로 이제는 고등 훈련기(T-50), 한국형 기동 헬기(수리온), 차세대 전투기(KF-X)까지 기술이 올라왔다. 함정 분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造船)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자체 건조가 가능하고, 전투 성능을 좌우하는 전투 체계도 꾸준히 확충하고 있다.
‘AUSA 2023′ 전시장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스에는 전 세계 자주포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해 ‘21세기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K9 자주포와 포탄 자동 이송 장치를 장착한 K56 탄약 운반차 등 최첨단 자주포 패키지가 전시됐다. 미군 관계자들은 한화 부스를 찾아 ‘K56이 미국 자주포와 어떻게 호환이 가능한 것인지, 기존 무기 체계 대비 투입 인원을 어떻게 3분의 1로 줄일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글로벌 선두권인 미국 한 방산 기업 직원은 한화 부스를 찾아 본인 경력을 소개하고 이직 가능성을 묻기도 했다.
한화 관계자는 “2017년 첫 AUSA에 참가했을 때는 과연 낮은 인지도의 우리 기술로 만든 무기 체계를 방산 강대국에 수출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면서 “올해 ‘전차 명가’ 독일을 제치고 호주 수출을 따냈고 이제 세계에서 인정받은 무기를 방산 최선진국인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시장을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존 켈리 한화디펜스USA 법인장은 “한국 방산업계는 이제 막 성인(coming of age)이 된 단계”라고 했다.
K방산은 중소·중견 방산 기업까지 확대됐다. 무인기·함정의 스텔스 성능을 높이는 도료(페인트)를 개발한 이티엘은 이번 AUSA 행사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 육군 연구 기관, 미 방산 기업과 기술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수출 품목도 과거 항공(KT-1 훈련기), 함정(군수 지원함), 탄약류를 넘어 유도 무기(천궁Ⅱ), 기동(장갑차), 창정비(廠整備)까지 다양해졌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은 원자력발전처럼 한번 사업을 따내기만 하면 후속 모델 수주를 수십 년 이어갈 수 있고 기계·전자·항공·통신 등 주변 산업 파급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