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는 9일 동신관유리공업, 오토닉스, 천양피앤비, 케이씨글라스, 한국하우톤, 한길텍메디칼(가나다순) 등 6사를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했다. 명문장수기업은 100년 이상 가는 강소 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2017년부터 매년 선정해 오고 있다. 해당 업종에서 45년 이상 사업을 유지한 중소·중견 기업 중에서 일자리 창출, 수출 증대 등 경제에 대한 기여도, 사회 공헌 실적, 기업 역량, 혁신 성과, 기업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지난달 전북 완주군 천양피앤비 생산 공장에서 최영재 천양피앤비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양한 색상의 한지 벽지 제품을 보여주는 모습. 최 대표는 "한지는 이차 전지, 건축 자재 같은 첨단 기술 제품에도 쓰이는 미래 소재"라고 했다. /김영근 기자

“한지가 진짜 붓글씨용 종이로나 쓰이는 ‘옛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박물관에나 있어야겠죠. 여전히 한지는 질기고 오래 쓸 수 있는 다른 어떤 소재보다 우수합니다.”

지난달 전북 완주군 사업장에서 만난 최영재 천양피앤비 대표는 “한지가 이차전지, 건축자재 같은 첨단 기술 제품에도 쓰이는 미래 소재”라며 이같이 말했다. 천양피앤비는 다양한 종류의 한지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으로,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선정하는 ‘제8회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됐다. 인쇄용, 포장용 한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지 제품을 생산하면서 지난해 매출 17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20억원을 예상한다.

천양피앤비는 설립 이후 60년 가까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위기 때마다 변신을 거듭해 왔다. 1966년 최 대표 아버지가 주로 인쇄용으로 쓰이는 한지 공장을 처음 연 뒤 1980년대까진 제작한 한지 전량을 일본에 수출하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000년대 초 값싼 중국지가 세계적으로 유통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전국 200개가 넘는 한지 업체 중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천양피앤비도 40~50명 되는 직원들 월급도 겨우 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고 한다.

이때 최 대표는 “한지로 벽지를 만들자”고 발상을 전환했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그 어떤 제지 소재보다 질기고 튼튼하다. 또 생분해되며 항균 효과도 뛰어나다. 새집증후군이 문제가 되고 건축 자재에서 환경호르몬 검출 우려가 컸는데, 최 대표는 튼튼하고 친환경 소재인 한지로 벽지를 개발한 것이다. 그는 이후 종이 박람회가 아닌 전국 건축박람회를 찾아다니며 한지 벽지를 홍보했다. 최 대표는 “과거에 한지는 갑옷에도 쓰일 만큼 질겨 천연 소재인 셀룰로오스(식물 세포벽의 성분) 소재 중엔 으뜸”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한지만 만지며 평생을 일하다 보니 한지의 강점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수요가 있는 곳을 찾아 ‘어떻게 하면 한지가 잘 쓰일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했다”고 했다.

2017년엔 연구 전담 부서를 신설해 본격적인 프리미엄 기술 개발에 나섰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연료 필터, 의상 가공용 한지, 기름 흡수가 가능한 식품 포장용 특수지 등을 개발해 출시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엔 항균 기능이 우수하고, 잘 썩는 마스크용 한지 필터를 개발했다. 덕분에 2020~2021년 미국 수출에도 성공했다.

최근엔 플라스틱이나 가죽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생분해 가능하고 질긴 한지 용기를 개발하고 있다. 플라스틱 등 잘 썩지 않는 소재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여겨지며 한지 산업에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차전지 분리막용 제품도 개발 중이다. 최 대표는 “현재 이차전지 분리막에 들어가는 종이 소재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쓰고 있는데, 연구를 해보니 그 종이 물성이 우리 한지랑 비슷하고, 강도 면에서 한지가 오히려 우수하더라”라며 “최첨단 전기차에 들어가는 종이를 우리가 만든다면 국산화 효과도 있고, 앞으로 수출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우리 것을 가지고 세계 1등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