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한길텍메디칼 공장에서 창업주인 아버지 김윤기(오른쪽) 회장과 아들 김정엽 대표가 본지 인터뷰 도중 이 회사의 의료 기기 샘플들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이 회사가 그동안 생산한 의료 기기만 2만여 종에 달한다. /이태경 기자

지난 9월 방문한 경기 화성 한길텍메디칼 공장. 전시실에 들어가자 인체 내부 뼈에 부착하는 티타늄 재질의 철심, 나사 등 각종 부품과 메스, 집게 등 의료 기기들이 선반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정형외과에서 부러진 뼈를 복원할 때 지지대로 사용하는 임플란트 제품이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다. 김정엽(44) 한길텍메디칼 대표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임플란트 부품 가짓수를 모두 따지면 2만여 종에 달하고, 지식재산권 45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한길텍메디칼 창업주 김윤기(77) 회장은 1968년 ‘한광의료기’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며 올해로 56년째 국산 의료 기기 개발·생산에 매진하고 있다. 당시 국내 병원들은 일본·미국 등 외국에서 수입한 의료 기기를 주로 사용했는데, 비싼 가격 탓에 재정 부담이 컸다. 김 회장은 1968년 국내 기능경진대회 기계 조립 부문에서 입상 경력이 있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이를 눈여겨본 의료 기기 유통업자가 김 회장에게 국산 제품 개발을 의뢰한 것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였다. 김 회장이 하나씩 국산화한 메스·가위 등 각종 수술용 의료 기기는 외국산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일선 병원에 공급됐다.

김 회장은 이후 30여 년 동안 수술용 의료 기기 생산에 집중했지만 회사는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국내에 유입된 탓이다. 믿었던 거래처에서 대금을 받지 못해 직원들 월급이 밀리기도 했고, 거래처와의 기술 분쟁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는 등 부침도 심했다.

이를 반전시킨 것이 김 회장의 아들 김정엽 대표였다. 건설사를 다니던 김 대표는 부친의 요청을 받아 2008년 한길텍메디칼에 합류했고, 정형외과용 임플란트 사업을 신사업으로 적극 추진했다. 기존의 메스·집게 등 제품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임플란트 생산용 공작기계를 들여놓는 것은 물론 해당 기계를 생산한 두산공작기계(현 DN솔루션즈) 공장에서 3박 4일간 먹고 자며 직접 작동법까지 배워 왔다. 현재 정형외과 임플란트는 회사 매출 70~80%를 차지하는 주요 먹거리다.

김 회장은 2021년 김 대표에게 대표이사 직위를 물려주고 기술 고문으로 생산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오른손 둘째·셋째 손가락은 첫 마디가 없다. 2012년 새로 들여온 장비를 테스트하다가 겪은 사고 탓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지금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장을 지킨다. 인체 내에 삽입되는 제품 특성상 정밀한 과정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한때는 아버지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며 공장을 잘 찾지도 않던 아들이 회사 경영을 맡아 불철주야 발로 뛰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며 “기업을 물려받은 아들이 100년, 2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기업을 가꿔나가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들어 대만·멕시코·이집트 등 해외에 수출을 시작하는 단계”라며 “앞으로 수출을 더욱 늘려 지난해 40억원 수준의 매출을 3년 후에는 1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