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전국적으로 ‘먹통 사태’가 발생한 지방행정 전산망은 시스템 노후 문제로 최근 5년간 연평균 1만7000건 이상의 장애를 겪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산망 시스템을 미리 제대로 보완했더라면 이번처럼 온 국민이 불편을 겪는 ‘대형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지방 행정 전산망인 '새올'과 온라인 민원 서비스‘정부24’가 먹통이 된 데 이어 1주일 새 4차례 국가기관 전산망이 장애를 일으켜 정부가 장비 노후화 상태 등을 점검 중이다. 사진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 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장애가 발생한 전산망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고운호 기자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지난 4월 내놓은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행정 전산망인 ‘광역지자체(시도) 행정정보시스템’과 ‘기초지자체(새올) 행정정보시스템’에는 최근 5년(2018~2022년)간 연평균 1만7113건의 장애(단순 오류 포함)가 발생했다. 일반 국민에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루 평균 46건꼴로 문제가 일어났던 셈이다. 특히 보고서는 “장비의 87%가 내구 연한을 경과했다”며 “시스템 노후화로 인해 신기술 적용 불가 등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사업 계획을 짜면서 지방행정 시스템의 현황을 파악해 작성한 것이다. 전국 17개 시도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광역지자체 행정시스템과 228개 시군구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쓰는 새올시스템은 각각 2004년과 2006년에 구축됐지만, 개통 이후 지금까지 ‘리뉴얼’(시스템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 만큼 최근 벌어졌던 전국적인 행정 전산망 먹통 사태는 결국 언제 터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정부는 시스템 노후화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미리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 소통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초 행정안전부는 시도행정시스템과 새올행정시스템을 통합·개편한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구축 사업(5846억원 규모)을 지난 2019년부터 추진하려 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예타) 대상 선정에 다섯 차례나 떨어진 뒤 지난해 4월에야 대상에 선정됐다. 현재 행안부는 내년 상반기쯤 예타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실제 예산 반영과 구축 사업 착수 등의 과정을 다 거치면 아무리 빨라도 2028년이 돼서야 새 시스템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사용한 지 ‘10년 이상’ 장비 12%

보통 일반 국민은 지난 17일 지방행정 시스템 먹통과 같은 대형 사고가 아니라면 정부 전산망 마비나 오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국민 누군가는 이 사고 때문에 필요한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을 수 있다. 지난 2020년 10월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알림e’가 원인을 알 수 없이 12시간 동안 먹통이 됐던 경우도 그 사례 중 하나다. 성범죄자알림e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신의 동네 주변에 성범죄 전력자가 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부 서비스다. 당시 언론들도 이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았던 사실을 미처 몰라 이를 제대로 보도한 곳이 없었지만, 그해 국정감사에서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이 사실을 지적해 알려지게 됐다. 의원실 관계자는 “초등학생 딸을 둔 한 학부모가 이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하다 이를 발견하고 제보해온 것”이라며 “당시 정부에선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IT(정보기술) 업계에선 이 역시 장비 오류나 노후 문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지원

이처럼 지방행정 시스템 외에 다른 시스템들도 노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45개 정부 부처의 1440개의 디지털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전체 장비 3만5500개 가운데 내구 연한을 넘긴 장비는 27%(9600개)에 달한다. 라우터(9년), 방화벽 장치(6년), 통신용 중계기(8년), 광(光)송·수신기(7년) 등 네트워크 장비들은 주로 내구 연한이 6~9년 정도인데, 사용한 지 10년이 넘은 장비도 전체의 12% 수준이다. 민간 시스템 보수 업체 관계자는 “IT 기업에서는 주요 시스템과 연결된 라우터 등 네트워크 장비를 보통 6~7년이면 새 제품으로 교체한다”며 “민간에 비하면 정부 대응이 너무 안일해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 “더 늦기 전에 바꿔라”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국가 전산망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재점검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일부일 뿐, 언제 또 어디서 이런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며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국민 이용이 많은 서비스와 관련된 행정 시스템부터 우선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노후된 장비들도 과감하게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도 제대로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최근 먹통 사태는 사용 연한이 지난 서버, 네트워크 장비들이 즐비한데도 정부가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바람에 사용 연한이 지난 장비의 일부만 교체해 쓰다가 시스템에 충돌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며 “필요한 예산을 제대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차라리 정부가 시스템 통합 관리를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그동안 정부가 디지털 분야에 많은 성과를 보였지만, 이제 디지털 서비스가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관리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가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게 아니라 민간 업체들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민간 기업들은 서비스가 회사의 존폐와 직결되기 때문에 오류 수정이나 장비 최신화에 더 적극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