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E2센터’에서 원자력시스템공학 전공 대학원생들이 미국 뉴스케일파워의 소형 모듈 원자로(SMR) 시뮬레이터를 살펴보고 있다. /박상훈 기자

지난 28일 오전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E2센터.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신호의 사이렌이 울리자 센터 앞쪽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12개 모듈 중 11개에서 전력 생산 중지 표시가 떴다. 실제 지진 발생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인데, 병원·군부대 등 필수 시설엔 끊김 없이 전기가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듈 12개 중 운전 상태가 가장 양호한 ‘1번’ 원자로만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뮬레이터를 제어하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들은 모니터에 뜬 수치를 꼼꼼하게 살피고, 비상 상황에 어떤 순서로 어떤 조치가 이뤄지는지를 체크했다. 이후에도 대학원생들은 다양한 비상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법과 점검을 이어갔다.

11월 개관한 서울대 E2센터는 전 세계 SMR의 선두 기업인 미국 뉴스케일파워의 SMR주제어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시뮬레이터다. 뉴스케일파워에 지분을 투자한 GS에너지·두산에너빌리티·삼성물산 등 3사 지원으로 미국 바깥에선 두 번째로 설치됐다.

이날 찾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선 차세대 원전 연구가 한창이었다. 탈원전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때 이곳 핵공학과 학생들은 도서관보다 거리로 나가 ‘탈원전 반대’ 서명 운동을 받고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더 잦았다. 불투명한 미래 탓에 중도 포기자도 속출했다. 2018년 학부 입학생 32명 중 6명이 자퇴하고, 전과하는 학생도 많았다. 탈원전 정책 5년 동안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생태계 복원과 수출,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 방침을 밝히며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래픽=김현국

◇서울대 원자력시스템공학 대학원생 2020년 8명, 올해 30명

서울대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시행 이전인 2017년 22명이던 원자력시스템공학 대학원 입학생은 2019년 11명, 2020년 8명으로 줄었다. 2021년에도 11명에 그쳤다. 하지만 2022년엔 입학생이 25명으로 다시 늘었다. 올해는 30명으로 최근 10년 동안 최대를 기록했다. 내년 1학기에만 17명이 추가 입학 예정이라고 한다.

기자가 이날 만난 6명의 원전 학도는 차세대 원전 연구·개발을 이어가며 원자력 강국의 꿈을 다시 키우고 있었다. 대학원생 임상훈(26)씨는 SMR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원자로시스템 개념에 대해 연구 중이라고 했다. 크기가 작아 트럭 등으로 운반이 가능해 광산·바다 등에 전력을 보급할 수 있다. 임씨는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인턴을 하면서 차세대 원자로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됐고 ‘미래 에너지원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겨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차세대 원전의 일종인 해상 부유식 원전에 관심이 많다는 대학원생 구자현(24)씨는 “다른 공대 분야에서 인턴 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1주일간 원전 실습 운전 수업을 듣고, 전공을 바꿨다”며 “한국이 차세대 원전 시장을 선도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원생 곽승민(24)씨는 한국·미국 등 전 세계 원전의 경제성과 건설사업평가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곽씨는 “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적시에 원전을 짓지 못하면 원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경제성도 떨어진다”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원전 건설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사 과정 3년 차인 김도현(29)씨는 원자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물리 현상, 가상의 사고 시나리오를 해석·평가하는 연구를 한다. 그는 “국민이 확실히 믿고 쓸 수 있도록 원자력 안전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원자로 안전성 평가 관련 다양한 해석방법론을 연구하는 안예린(28)씨는 “원자력이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미래 에너지라고 믿어 탈원전 정책 때도 연구를 지속해왔다”고 했다.

◇정쟁 대상 됐던 원전… ”연구만 전념하게 해 달라”

원자력 전공 대학원생들과 교수들은 에너지 정책의 큰 그림이 정권에 따라 달라지거나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응수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은 “E2센터를 개관할 때 미국의 뉴스케일파워 관계자가 ‘2007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정부가 세 번 바뀌었는데, 정부 정책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고 하더라”며 “우리도 일관성 있는 정부 지원으로 꾸준히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원생 배기원(22)씨는 “입학 후에 원전 업계가 여러 풍파를 겪었는데, 과학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