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전략과 신사업 발굴을 책임지는 지주사 SK㈜가 300명 규모의 조직을 3분의 1(약 100명)로 축소하기로 원칙을 정하고, 직원들을 계열사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지난 7일 10여 명의 사장 교체를 단행한 SK그룹이 후속 인사를 진행 중인데, 그동안 공격적으로 운영돼온 그룹 투자 기능을 대폭 줄이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SK 지주사는 그동안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 수조 원으로 광범위한 해외 투자를 해왔으나, 대부분 비싸게 샀거나 그룹 사업과 시너지가 크지 않은 것도 많았다”며 “현실적으로 3분의 1로 축소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전격적인 분위기 쇄신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 그룹 신사업 투자를 책임지게 된 장용호 SK㈜ 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검소함’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임직원에게 검소할 것을 권고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이제 과거와 달리 투자든 씀씀이든 신중하게 아껴서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SK뿐만 아니다. 최근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주요 대기업들이 선제적인 긴축 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임원 수와 복지를 축소하는 한편, 실적 부진이 심각한 회사들은 희망퇴직까지 받고 있다. 연말 연초 지급되는 보너스도 대폭 삭감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임원 대우 축소, 희망퇴직, 보너스 삭감
최근 삼성·SK·LG·한화 등 주요 기업들은 신규 임원 수를 전년 대비 크게 줄이고, 더 많은 임원을 내보내는 인사를 했다. 임원 복지도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승진한 부사장에게 지급하는 차량을 대형 세단 ‘제네시스 G90′에서 준대형 세단 ‘G80′으로 바꿨다. 또 사장급에서 퇴임한 상근 고문직 50~60명 대다수를 비상근으로 전환시켰다. 통상 상근 고문직 수명은 3년이었지만, 이번 조치로 다수가 1~2년 만에 비상근으로 내려왔다. 상근 고문직은 차량·비서·사무실·골프 회원권·법인 카드가 보장됐는데 비상근 고문은 차량·비서·사무실 등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급여도 줄어든다.
적자가 지속 중인 SK온은 임원들도 출장 시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SK온 관계자는 “원가 경쟁력을 위해 작은 비용도 민감하게 생각하자는 취지”라며 “자발적으로 이코노미를 타거나 저렴한 경유 노선을 이용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디스플레이·석유화학·태양광 등 중국산 공세로 실적 부진이 심각한 기업들은 희망퇴직을 접수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5일부터 40세 이상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하고 있다. 올해 누적 적자가 2조6400억원에 달해 파주·구미 LCD 노후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은 3년 연속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나자 희망퇴직을 받는 중이다.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도 근속 1년 이상 된 생산직을 대상으로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유통 업계도 칼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월 롯데홈쇼핑이 근속 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접수한 데 이어, 롯데마트는 지난달부터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롯데마트의 희망퇴직 접수는 2021년 상반기, 하반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SK 계열사 11번가도 창사 후 첫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실적 부진으로 연말·연초 보너스도 삭감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수천만 원의 성과급 축제를 벌였던 반도체 업계는 올해 적자를 기록, 실적대로라면 보너스가 ‘제로’가 된다. 재계 관계자는 “인재 이탈 우려로 위로금 정도만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 저성장 기조 이어질 듯
기업들은 내년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일단 긴축하며 대비하려는 모습이다. LG그룹은 지난 7일 사장단 협의회를 열고 “저성장과 수요 위축이 장기화되며, 경기 반등이 단시간에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14~16일 글로벌 전략 회의를 여는 삼성전자 경영진도 저성장 관련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사이클 호황인 조선업 정도는 선방하겠지만, 미국 경기 둔화와 전기차 수요 감소로 자동차·배터리 산업도 기세가 꺾이고 있고, 반도체 회복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해 2024년은 전반적으로 어둡다”고 말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금리와 전쟁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계는 그나마 전쟁 종료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전쟁이라도 끝나야 재건 사업이 본격화돼 건설·인프라를 중심으로 경기 회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조만간 하마스 함락으로 종료될 것이란 기대가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3년 가까이 장기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푸틴의 대선 도전과 미 대선을 계기로 어떤 방식으로든 종식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부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