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중 수교 이후 한중 무역의 핵심은 중국이 한국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제품 등 중간재를 수입해 재가공품이나 완제품을 만들어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분업 구조였다. 그러나 철강을 시작으로 석유화학, 이차전지 등 산업 전반에서 중국산 중간재의 경쟁력이 높아지며 이 같은 구조는 약화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2010년 이후 ‘중국 제조 2025′(2015년), ‘쌍순환 전략’(2020년)을 잇따라 발표하며 제조업 성장과 내수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한국산 중간재’의 수출 경쟁력은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올해 6월 한국무역협회의 ‘대중국 수출 부진과 수출 시장 다변화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 자립도는 최근 7년 새 중간재를 중심으로 눈에 띄게 올랐다.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자한 디스플레이의 경우 수출 자립도가 2015년 -0.137에서 2022년 0.899로 올랐다.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수출 자립도가 높다는 의미로, 반대로 한국 디스플레이의 대중 수출 경쟁력은 떨어졌다는 뜻이다.
석유화학은 -2.115에서 -0.277로, 이차전지는 0.595에서 0.931로 올라갔다. 단적으로 한국의 석유화학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최근 대규모 증설을 통해 2022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1위 생산능력을 달성했다. 석유화학공업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의 경우 내년 중국의 생산능력은 올해보다 5.1% 증가한 5440만t으로 전망하는데, 중국 수요(4552만t)를 채우고도 남는다.
이와 같이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오르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한 품목 가운데 중간재가 차지한 비율은 2007년 37.2%에서 2014년 23.6%, 2022년 22.0%로 급락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중국 현지 공장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으로 대거 옮기는 ‘탈중국’을 진행하면서 대중 중간재 수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은 이달 4일 발표한 ‘중국 성장구조 전환과정과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에서 “중국 수출품에 대한 기술 수준과 경쟁력이 높아짐에 따라 글로벌 상품 시장에서도 우리나라와의 경쟁이 확대될 것”이라며 “수출품의 대외 경쟁력을 제고하고, 수출 시장 다변화를 통해 중국에 편중된 수출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