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하림그룹 컨소시엄이 선정되면서 300여 척 선대(船隊)를 갖춘 초대형 국적 선사 탄생도 가시화됐다. 향후 본계약 협상이 남았지만, 컨테이선 위주 HMM과 벌크선 위주 하림그룹 팬오션이 통합 선대를 꾸리면 한국 국적 선사 최초로 300척 이상 선박을 운영하는 선사가 된다. 해운 업계에선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을 모두 운영하며 포트폴리오를 늘린 건 장점이지만, 6조원 넘는 인수 자금 조달과 최근 급락한 해운 운임 등 불황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픽=김현국

◇조선·금융·항만 연계한 국가 기간산업 활로 찾나

해운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원자재 및 수출입 물량 운송의 99%를 담당하는 핵심 산업이다. 선박을 공급하는 조선,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화물을 하역하는 항만, 화물 운송과 모두 이어지는 중추 산업으로 연관 산업으로 파급 효과도 크다.

그러나 2017년 당시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컨테이너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한국 해운’ 산업도 크게 꺾였다. 당시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금융 당국,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부실기업 퇴출’이란 원칙을 내세웠고, 결국 한진해운은 사라졌다. 당시 국내 2위였던 HMM이 국내 1위 선사 자리를 이어받아 한국 해운의 명맥을 유지했지만 경영난은 비슷했다.

이후 HMM도 산은 관리에 있다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해운 호황이 이어지면서 ‘경영 정상화’ 판단에 따라 매각 절차가 본격화했다. 최근 해운 운임이 급락했지만 HMM의 현금성 자산만 10조원에 달한다.

◇韓 구조조정 때 몸집 키운 경쟁사들... 인프라 확대 관건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300척 규모 선사가 탄생하지만, 인수 후 시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해진 항로를 주기적으로 운항하는 컨테이너선은 ‘버스’, 광물·곡물 등 특정 화물을 부정기적으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은 벌크선은 ‘택시’와 비슷해 같은 해상 운송이라도 다른 시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선사 순위 지표인 컨테이너선 선복량(적재량)에서도 8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수준으로, 약 3% 점유율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HMM은 현재 약 78만TEU(2.8%)로 글로벌 8위지만, 팬오션의 컨테이선 비율이 작은 영향이다. 글로벌 1위 스위스 MSC(553만TEU·19.7%), 2위 덴마크 머스크(412만TEU·14.6%)와 격차는 매우 크다.

지난 10년간 한국 해운의 구조조정으로 놓친 항만 터미널 등 인프라 구축도 급선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고병욱 해운연구본부장은 지난 7월 인천국제해양포럼 토론회에서 국적 선사들의 역량 강화 방안과 관련해 “코로나19 물류 대란으로 약 2년간 사상 유례없는 초초황으로 선사들의 막대한 수익금이 발생했고, MSC, 머스크 등 글로벌 선사들은 물류 자산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우리 국적 선사인 HMM 등은 아직 가시적인 자산 투자 활동을 내놓고 있지 않는데 선박 확보뿐만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구조조정으로 놓친 항만 터미널 등 자산 확대에 대한 숙제도 있다”고 했다.

하림의 향후 자금 조달 문제, 급락한 운임 등 경기 불황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하다. HMM 인수가는 6조4000억으로 알려졌는데 하림의 현금 보유액 10조원의 60%를 넘는다. 하림은 컨소시엄을 꾸린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와 유가증권 매각, 영구채 발행 등으로 인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하림이 채권단이 보유한 HMM 영구채 주식 전환을 3년간 유예해달라고 요구하면서 ‘특혜 논란’과 함께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지연되기도 했다. 채권단이 영구채 전환을 유예하면 그 사이 하림은 수백억 원대 추가 현금 배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매각 측이 제안을 거부해 없던 일이 됐지만, 하림 자금력의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었다”고 했다. 그 밖에 2년 새 약 5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해상 운임, 인수 과정에서 HMM 노조의 반대도 주요 변수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