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달린 머리띠를 쓰고 카메라 앞에 섰다. 조 사장이 취임한 이후 회사 구성원들과 소통을 위해 만든 ‘CEO 펀 토크(F.U.N. Talk)’의 9번째 시간이었다. 한 젊은 직원이 “내년엔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냐?”고 하자 그는 “상사와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날 방송은 LG전자 직원 1만여 명이 동시에 봤다.
하나증권은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직원이 주축인 청년이사회 ‘체인지 리더’를 지난 8월 꾸렸다. 청년이사회는 주요 경영진 회의, CEO 분기 간담회 등에 참석하며 MZ 직원들 의견을 경영진에 직접 전달한다. 서울교통공사의 MZ 세대 노조인 ‘올바른노동조합’은 지난 10월 이사회에 처음 진입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MZ력(力)’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MZ력은 기업이나 지자체가 MZ들과 얼마나 원활하게 대화하면서 이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따지는 용어다. 소셜미디어에서 MZ 세대의 언어를 얼마나 알아듣느냐 정도로 가볍게 쓰였으나, 최근엔 MZ 세대 직원·소비자와 소통 능력을 포괄하는 비즈니스 용어로 확장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0대는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의 28%, 경제활동인구의 32%를 차지한다. 경제활동의 핵심 주력이자 최대 소비자인 셈이다. MZ가 주축이 된 노조나 주니어 보드를 통해 의견을 듣거나 경영 과정에 참여시키고, 이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 MZ력 키우기에 나선 것이다.
◇MZ력 키우기 시스템 만드는 기업들
지난 8월 삼성전자 내부 행사에선 경쟁품인 아이폰 인기 비결을 묻는 말에 한 임원이 “10대들의 막연한 선망, 성인이 되면 갤럭시를 쓰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답했다가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 한 직원은 “10대 사이에선 아이폰을 안 쓰면 따돌림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는데, 현실을 모르는 답변이었다”고 했다.
기업은 MZ 세대 직원과 접촉을 늘리고, 이를 시스템으로 정례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지난 5월 MZ 세대들과 햄버거를 먹는 이른바 ‘갓생한끼’ 시간을 가졌다. 그는 새로운 자동차 구독 서비스를 출시할 때도 “우리 아들도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지 않으려고 하더라.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 공유하길 원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사업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신세계는 MZ 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기 위한 ‘e-아이디어톤’ 대회를 열고, 코카콜라는 Z세대 직원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사내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HD현대·LG화학·GS칼텍스 등 전통 제조 기업들도 MZ 세대 ‘해커톤’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회식 문화, 사내 호칭 등 조직 변화를 통한 MZ 직원 붙들기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자사 구내식당에서 20~30대 젊은 직원들이 선호하는 ‘줄 서서 먹는 맛집’ 음식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음식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연말 송년회를 매년 MZ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또 비혼(非婚) 지원금 신설(LG유플러스), 반려동물 장례 휴가 1일(롯데백화점·러쉬코리아) 등 MZ세대 변화에 맞춘 직원 복지도 늘리는 추세다.
◇지자체도 MZ력 키우기 나서
지자체도 젊은 인구 이탈과 MZ 세대 공무원 퇴사를 막기 위한 각종 제도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은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가 이전하고 직원 5만명이 새로 옮겨오면서 젊은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곳으로 꼽힌다. 39세 이하 연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61.2%를 차지한다. 그러자 아산시는 주니어보드를 신설해 MZ 세대가 원하는 편의시설을 넓히기 위한 정책 발굴에 나섰다. 아산시 관계자는 “전기자전거 대여 및 지원, 보육제도 강화 등에 대한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의회 역시 10년 차 미만 공무원의 퇴직률을 낮추기 위해 장기재직휴가 제도를 최근 확대했다.
☞MZ세대·MZ력(力)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태어난 Z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현재 20~30대가 주축이다. 이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컬어 MZ력(力)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