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G2의 무역 갈등이 촉발한 신냉전 구도 속에 새로운 통상 질서가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밀어내고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월별 기준)으로 부상했다. 한중 간에 활발하던 국제 분업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균열을 내는 가운데 호황을 맞은 미국 경기,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 등이 숫자로 나타난 것이다.

수출이 늘면서 대미 무역 흑자는 2002년 이후 21년 만에 1위로 복귀했지만, 대중 무역은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이어오던 기조가 31년 만에 적자로 바뀌었다. 적자 규모도 180억달러(약 23조4000억원)에 이르면서 원유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둘째로 컸다.

2024년 1월 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지난해 12월 대미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0.8% 급증한 112억9200만달러(약 14조7000억원), 월간 대미 무역수지(수출-수입)는 50억3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대미 수출도, 대미 흑자도 모두 월간 최대다.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웃돌기는 2003년 6월 이후 20년 6개월 만이다.

미국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밀어내고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월별 기준)으로 부상했다. /그래픽=김현국

중국 수출은 줄고, 동시에 미국 수출은 20% 이상 급증한 결과다. 자동차가 미국 수출을 앞에서 끌고, 휴대폰, 일반 기계 등이 뒤를 받쳤다. 지난해 12월 자동차는 전년 동월 대비 58.4%, 일반 기계는 76.9%, 휴대폰은 38.5% 늘었다. 대중 수출이 많은 반도체가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삼성·SK·현대차·LG 등 국내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반도체·이차전지·전기차 공장 등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각종 제조 장비와 공조 설비, 건설 기계 수출이 급증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인협회 실장은 “2010년대 후반 시작된 미국 내 현지 투자 압박이 국내 기업의 현지 공장 건설로 이어진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망 재편에 따른 수출 유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과거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 역할을 하며 한국산 반도체, 석유화학 제품 등 중간재를 빨아들이던 중국은 내수 부진과 공급망 재편, 자급률 상승 등 요인이 겹치며 우리 수출시장에서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미 수출이 지난 9월 이후 100억달러대를 이어가며 상승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12월 대중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9% 줄어든 109억달러에 그쳤다.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와 이차전지에 높게 벽을 친 덕분에 국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대미 수출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수혜를 본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수출 확대를 발판으로 역대 최대인 1157억 달러(150조3000억원)에 달했고, 무역 흑자도 사상 최대인 445억 달러(57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연간 기준으로 대미 수출은 2005년 이후 18년 만에 아세안을 제치고 2위 수출시장으로 올라섰다. 중국과 미국의 수출 비율 차이도 2003년 이후 최소 수준인 1.4%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래픽=김현국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올해부터 현지에서 가동에 들어가는 국내 기업들의 공장이 속속 확대되면서 미국으로 향하는 부품 물량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중국 경기 회복 여부에 따라 대미 수출과 대중 수출 규모는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